지난달 28일 SBS 주말 인기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출연해 논란이 됐다. ‘일요일 오전 전 국민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정치 홍보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이유로 프로그램을 폐지하라는 요구가 줄을 잇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반박글을 올리며 시청자 게시판이 한동안 요란했다.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날 방송 전반부에 윤 대통령과 반려견이, 후반부에는 파양동물을 맡아준다며 수백만원의 비용을 받은 업체들이 위탁받은 개·고양이를 업자에게 넘겨 죽여온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나왔어요.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많은 시청자가 채널을 돌려버린 탓에 결과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죠. ‘퍼스트 도그’에 가려져 가장 밑바닥 ‘라스트 도그’들의 비극이 묻혔다고나 할까요. 순서를 바꿔 방송을 내보냈으면 어땠을까···, 아쉽습니다.”

최근 두 반려견 다온, 모아와의 교감을 담은 책 ‘나에게도 개행복’(연인M&B)을 출간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말이다.

3선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전병헌 전 수석은 책에서 다온이가 산책길에서 다친 까치를 구출한 일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한 줄 알고 물에 뛰어든 일화 등 두 반려견과의 일상생활을 담백하고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가 반려견 다온이을 입양한 것은 인생 최고의 힘든 시기를 보냈던 지난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 고위인사 가운데 첫 검찰 수사대상이 됐을 당시였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그는 새 정부 출범 불과 6개월 만에 날벼락을 맞았다. 검찰은 그에게 뇌물과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횡령, 직권남용 등 혐의를 적용해 징역 8년 6월을 구형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검찰 수사는 제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억울함에 뼈가 사무치던 어느 날, 딸아이가 커뮤니티에서 가정 입양 소식을 듣고 강아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는데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겼죠. 망설임 없이 지금 당장 데리러 가자고 했습니다.”

첫눈에 반해 입양한 반려견의 이름은 ‘다온’.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아내는 처음엔 반려견 입양을 반대했지만, 지난해 두번째 강아지(모아) 입양에 적극 찬성할 정도로 변했다.

책에는 이처럼 다온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함께 한 5년의 기록이 채곡채곡 쌓여 있다.

“그 힘들었던 시기에 만난 이 작은 생명체가 큰 위로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한번은 다온이가 아파서 일주일간 음식을 못먹었는데, 제 마음이 찢어지더군요. 반려견을 통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배우게 됐습니다.”

두 반려견이 공황상태에 빠졌던 그를 구원해주는 와중에, 수사는 요란했던 시작과는 다르게 마무리됐다.

검찰이 두 차례 청구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고, 재판에서도 대다수 혐의가 무죄 판단을 받았다. 떠들썩했던 정치적 사건은 선고 실효의 복권으로 최종 마무리됐지만 검찰 수사는 ‘잘나가던’ 정치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부분 알지도 못한 일들이 피의사실로 매일 공표되면서 총 15건에 달하는 인해전술식 대량 기소를 당했어요. 본안 유죄에 대한 검찰의 자신감이 그만큼 없었다는 반증인 동시에 정치적 표적수사였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4년 가까운 수사와 재판의 지옥 같은 시간을 많은 분의 격려와 반려견과의 교감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전 전 의원은 최근 반려견의 시선으로 새롭게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동물이 물건으로 취급받는 현행법을 지적하면서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2016년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모란시장 개 판매장을 철거한 것을 두고 “저항도 있었고, 논란도 있었지만, 다수 여론의 지지가 개고기 판매금지 지속화에 큰 힘이 되며 우리나라에서 동물복지의 담론이 시작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며 유기견 안락사 문제, 식용 개 논란 등 많은 현안에 국민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또 일명 시고르자브종으로 불리는 믹스견이 잔병치레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시고르자브종과 같은 사회 통합을 기대해 본다”고도 했다.

과거 유독 애정이 깊었던 e스포츠 팬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전 전 수석은 한때 한국e스포츠협회장을 지내며 많은 공헌을 해 팬들과 친근했다.

“진실과 결과가 어찌됐든 수사 과정에서 e스포츠가 언급되며 팬들이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시한번 사죄드립니다. e스포츠에 대한 저의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e스포츠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