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도쿄 올림픽 수영 남자 200ｍ 개인혼영 금메달리스트 왕순과 디지털 점화자가 함께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00분 동안의 휘황찬란한 쇼였다. 그저 나라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이제는 기술에서도 세계 최고라는 중국의 자신감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23일 오후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며칠째 계속 내린 비가 이날 오전까지 이어지면서 장소 변경에 행사 규모 축소 가능성까지 언급됐지만, 다행히 비는 오후 들어 잦아들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8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가 입장하면서 행사는 막을 열었다. 스타디움 안에 먼저 들어와 섰던 수백 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펄쩍펄쩍 뛰며 국가 제1인자의 입장을 맞이했다. 파란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은 깃발을 흔들었고, 노란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은 양팔을 흔들었다. 좌석을 가득 채운 관중들도 크게 함성을 질렀다. 시 주석이 오른팔을 들어 보이자 함성은 더 커졌다.
스타디움 바닥에는 원형의 거대한 LED 디스플레이가 깔렸고, 허공에도 35장의 직사각형 형태의 수직 LED가 매달려 있었다. 허공의 LED 디스플레이가 전체로 연결돼 하나의 스크린 역할을 했다.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 규모의 공연이 바닥과 허공의 화면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여기에 방송 화면에는 증강현실 기술까지 접목이 됐다.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때로 수백 개의 등롱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때로는 연기도 없고 소리도 없는 불꽃놀이 폭죽이 끝도 없이 터졌다. 방송만 보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23일 오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공연은 항저우를 가로지르는 첸탕강의 물결을 상징하는 춤으로 시작했다. 파도 형상의 그림이 스타디움 바닥 한가운데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그 위에서 무용수들이 춤을 추며 장관을 이뤘다. 첸탕강의 물결을 통해 ‘세계로 향하는 아시아의 물결’을 표현하려 했다고 조직위는 설명했다.
이어 파란 물결은 녹색으로 변했고 다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수직 디스플레이에서는 불빛이 점멸하며 소를 몰고 쟁기질 하는 농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저우의 가을 추수를 표현하는 공연이었다. 개막식이 열린 이 날은 24절기 중 추분, 수확의 시기다. 대회가 열린 항저우는 5000년 전 이미 벼농사를 시작한 중국 량주문명의 중심지다.
공연에 이어 중국 국기 오성홍기가 경기장에 들어와 게양대에 걸렸고, 그 후로 각국 선수단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차례로 입장했다. 구본길(펜싱)·김세영(수영)이 공동 기수를 맡은 한국은 16번째로 입장했다. 북한은 그보다 앞서 7번째로 입장했다. 5년 만에 국제 스포츠 무대로 복귀한 우호국 북한 선수단이 입장하자 큰 함성이 나왔다. 그러나 바로 다음으로 홍콩 선수단의 입장에 더 큰 함성이 나왔고, 이후 대만의 입장 때는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홍콩, 대만 그리고 마카오 선수단이 입장할 때 스타디움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는 손 흔드는 시 주석의 모습이 크게 잡혔다.
선수단 입장에 각종 연설, 선수 선서까지 끝나고 본격적인 쇼가 다시 시작됐다.
베이징에서 이곳 항저우를 잇는 대운하가 스타디움 안에 펼쳐졌다. 운하 위로 배가 떠다녔고, 주황색 등롱을 든 여성들이 바닥을 가득 메웠다. 줄에 매달린 남녀 한 쌍이 파란 물결 위로 허공을 날았다.
항주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 ‘서호(西湖)’가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가 하면 대회 마스코트 천천(宸宸), 충충(琮琮), 롄롄(蓮蓮)이 거대한 3D 축구공, 농구공 그래픽과 함께 등장하기도 했다.
성화 봉송은 거대한 쇼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다.
도쿄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왕슌이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로 불꽃을 넘겨받았다. 그 순간 가상현실로 그려진 거대한 성화 봉송 주자도 스크린의 첸탄강을 타고 스타디움으로 뛰어 들어왔다. 현실의 왕슌과 가상의 성화 봉송 주자가 함께 뛰었고, 함께 성화대 앞에 섰다. 현실의 불꽃과 가상의 불꽃이 동시에 성화대로 향했고, 단숨에 성화대에 불이 붙었다. 가상의 봉송 주자는 크게 손을 흔들고 그대로 사라졌다. 중국이 자랑하려 한 기술력이 마지막 성화 봉송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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