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영(23·KIA)은 지난해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출전했다. 프로 데뷔후, 한 팀의 마무리로 자리잡은 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출전한 대회에서 정해영은 만족스럽지 못하게 대회를 마쳤다. 특히 일본과 결승전에서 연장 10회말 등판해 승부치기에서 만루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한국은 3-4로 져 준우승 했고, 정해영은 공 4개를 던지고 패전 투수가 됐다.

정해영은 그 대회를 마친 뒤 속앓이를 했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발전이 없다”는 쓴소리도 들었다. 고개 숙였던 정해영은 “내 심장이 크지 않구나, 내가 약하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 팬들로 가득한 도쿄돔 한가운데서 던지다보니 한국에서 큰 경기에 나섰을 때와는 또다른 압박감을 느꼈고 그런 부담을 이길만한 구위와 배짱이 더 필요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해영은 “내가 더 커야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새 시즌 전, 정해영은 예정에 없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메이저리그 구단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개막 2연전을 치르는 MLB 월드투어가 열렸고, 이벤트로 두 팀과 연습경기를 위해 ‘팀 코리아’가 소집됐다. KBO리그의 젊은 선수들이 동원됐고 정해영도 소집됐다. 국제대회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젊은 선수들은 기대했다.

정해영은 넉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투구를 했다. 17일 샌디에이고와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7회 마운드에 올라 1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했다. 선두타자 9번 잭슨 메릴에게 중전안타를 맞고 도루까지 내주며 무사 2루에서 시작했지만 잰더 보가츠를 좌익수 플라이로,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를 2루수 플라이로, 제이크 크로넨워스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 샌디에이고가 자랑하는 상위 1~3번 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고 끝냈다.

경기 뒤 정해영은 “경기 시작할 때 샌디에이고 선수들이 나오는 모습 보면서는 조금 긴장이 됐는데, 고척 돔 많이 올라가봤고 한국 팬들도 많으셔서 그랬는지 마운드에서는 별로 긴장 안 했다”며 “한국에서도 실투 하나로 홈런을 맞으니까, 메이저리그 톱클래스 선수들은 실투 안 놓칠테니 집중하자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정해영은 KIA의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공이 엄청나게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달라진 모습으로 시즌을 준비해왔다. 지난 시즌 뒤 떨어졌던 자신감을 점점 찾고 있던 중 ‘팀 코리아’에 합류했고 이날 샌디에이고전 투구로 자신감을 더 끌어올리게 됐다.

안타는 맞았지만 메릴에게 던진 4구째는 시속 150㎞를 찍었다. 정해영은 최고구속이 140㎞대 후반, 스스로도 “150㎞는 1년에 한 두 번 정도 나온다”고 할 정도다. 1사 2루에서는 타티스 주니어를 바깥쪽 슬라이더로 2차례 헛스윙 유도한 뒤 풀카운트에서 마지막 8구째에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구속은 물론 변화구까지 확실히 구위가 올라온 상태임을 메이저리거와 대결에서 확인했다.

정해영은 “시범경기 때는 세트포지션을 할 때 구속이 3~4㎞ 떨어졌는데, 오늘은 첫 타자 안타 뒤 세트포지션 했는데도 구속이 유지돼서 긍정적이었다”며 “대표팀에서 최선을 다하되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개막 전이니까 시즌 준비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자신감이 좀 더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를 마친 정해영은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팀 선배 박찬호(KIA)가 보낸 메시지였다. 정해영은 “찬호 형이 ‘팔 빠지겠다’고, ‘팀에선 왜 그렇게 안 던지냐’고 연락 왔다. 잘 던졌다는 칭찬을 그렇게 해준다. 전력으로 던지기는 했다”고 웃으며 “좋은 경험을 했으니 이제 팀에 가서 개막 준비 잘 하고 올시즌 자신있게 던져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