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해동용궁사를 다녀온 적이 있다. 마음이 몹시 심란하여 갔는데 거기에 ‘지옥은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희망이 절벽인 상태에서 눈 뜨면 지옥이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눈을 감거나, 아니면 집착을 놓아버리라는 것이다. 아직 영원히 눈을 감기는 젊은 나이라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집착(執着/obsession)은 어떤 대상에 마음이 쏠려 매달리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집착이야말로 제일 어리석고 비참하고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석가모니는 중생들이 집착을 떨쳐내고 해탈에 이르는 것을 돕기 위해 불교를 창시했다.

성경은 ‘집착’이라는 단어나 개념을 통해서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집착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십계명에는 남의 재산과 배우자에 대하여 시기하고 탐내지 말라고 적혀 있다.

시기도 그저 가벼운 부러움 정도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타인을 증오하고 괴롭히면 죄악이 된다. 이는 나이, 성별, 직업,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불특정다수에게서 발현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질투심이 더 심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정도를 넘어선 경우 질투가 증오, 즉 집착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운과 불운을 경험한다. 그래서 운칠기삼을 얘기하고 심지어 운칠복삼이라고까지 한다. 그만큼 운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행운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 이에 비해 불운은 온전히 혼자 감당하면서 극복해야 한다. 누군가 곁에서 거들어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특별히 다른 방도가 없다.

불운이 닥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불운으로 빠뜨린 사람이나 일을 증오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 집중하여 사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생의 품격과 성패를 결정짓는 중대사다.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리 큰 상처와 불운이 닥쳐도 다시 일어나 스스로를 치유한다. 반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작은 불운에도 쉽게 쓰러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은 온 우주 전체가 아니다.

오직 우리 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한정된 세상이다. 따라서 내 마음이 쉬면 세상도 쉬고, 내 마음이 행복하면 세상도 행복하다. 마음 따로 세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내 마음의 렌즈를 먼저 아름답게 닦는 것이 우선이다.

인간이나 사회도 아프고 힘든 시기가 있지만 그걸 잘 극복하면 성장한다. 다만 그 방향이 좋은 쪽으로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인생은 사람 덕분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사람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상처를 주느냐‘며 타인을 미워하고 탓하고 싶은 심정이 앞선다.

숱한 인간관계 속에 고독과 절망, 배신과 분노 그것은 사랑의 이름으로, 우정의 이름으로, 동료의 이름으로, 상사의 이름으로, 간혹 가족의 이름으로 찾아온다. 틀어지고 엉클어져 도저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혼돈에 빠진 관계들로서 말이다.

집착의 처음을 떠올려 본다. 숱하게 무너져 나를 끝없이 갉아먹은 시간, 사람 덕분에 행복했던 순간과 사람 때문에 무너져 내렸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원망하고 분노하고 치를 떨어 봐야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랴. 치유되지 않는 상처만 더 커지겠지.

타인이 지옥의 모습으로 올지라도 그 지옥도 언젠가 잊히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무너지지 말자고 다짐하자. 잊힐 이름 때문에 자신을 갉아먹지 말고 타인은 분명 지옥이지만 낙원이 되어 주기도 한다는 걸 새기자. 백척간두 진일보를 위하여 붙잡고 매달리는 것 놓아버리자. 그러면 눈 뜨는 것이 지옥이 아닌 설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단법인 힐링산업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