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중 ‘선 넘는 녀석들’이라는 프로를 종종 본다. 국경의 선, 분단의 선, 시간의 선, 그리고 지식의 선까지 넘나들어 흥미를 유발한다. 대한민국 지식 예능 부흥기를 이끌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뉴욕에 가면 허드슨 강물(Hudson River)과 바닷물이 맞닿는 곳이 있다. 이처럼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솔트라인(Salt line)이라고 부른다. 산과 들을 돌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의 순리대로 유유히 흘러온 강물은 어느 순간 바닷물과 부딪히게 된다. 피할 수 없는 곳에서 민물은 자신과 전혀 다른 짠물을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솔트라인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밀물 때가 되면 사정없이 강물을 밀어 올리는 바닷물은 썰물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물러난다. 이렇게 밀고 당기는 동안 연어가 돌아오고 풍천장어의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그뿐이랴. 겨울초입에 풍성한 먹이를 찾아 갯벌로 몰려든 철새들이 군무(群舞)로 장관을 이루게 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솔트라인이 있을 때 풍성해지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네 삶에도 그 선을 넘으면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매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나와 내 주변의 관계를 지키고, 자신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톰 행크스의 말처럼 인생을 경계선 없이 살면 기쁨이 덜 한 것이다.

그런데 지경을 넘는다는 것은 어쩐지 뭉클한 감흥을 준다. 이동에 대한 물리적 확인이자 일탈의 경험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빛나는 인생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힘겨운 인내로 가득하다. 이처럼 내적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마다 복잡 미묘한 관계의 경계선이 존재한다.

중국 심리상담사 쑤쉬안후이가 쓴 <내 삶을 지키는 바운더리>는 사람들 사이 관계의 경계선에 대한 의미를 알려준다. 저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되고 피로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 타인과 나 사이 관계의 경계선과 심리적 경계선이 불분명하고, 그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상황들을 장기간 관찰하고 탐구한 후, 인간관계가 인생을 망치기 전에 경계선을 바로 세우라고 주문하고 있다.

‘인간관계의 경계선’에서 사용되는 ‘경계선’은 일종의 범위이자 거리다. ‘심리적 경계선’이라는 말에서 ‘경계선’은 개인의 내재적 공간으로, 자주권과 독립권을 유지하고 보장할 수 있는 방어선이자 마지노선이다. 이는 관계의 멀고 가까움, 친밀함과 소원함 그리고 개인의 상태에 근거해 조정되는 것이므로 탄성과 신축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만약, 몸과 마음 그리고 감정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인간관계가 혼란과 피로감으로 가득 차 있다. 상처만 많은 부정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 질책과 자책으로 만연한 삶을 살고 있다. 습관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강압한다. 자기 회의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지나친 책임감에 짓눌리거나 타인에게 의존한다. 호의를 바라거나 마찰을 두려워하고 소통을 회피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나는 관계의 경계선이 무너진 사람이다. 이 관계의 경계선을 회복하고 뚜렷이 해야 한다. 그래야 내면의 질서와 안정적인 정체성을 찾고,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누리며 매 순간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관계의 경계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내가 되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유일무이한 개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의 생각, 관점, 가치관 그리고 평가만 가득 채워져 있다면 진정한 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지탱해 준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여태 해 왔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깨지고 다시 일어나 사람과 인생의 경계선을 회복시키고 또 다시 넘나든다. 공양미를 바치듯 애쓴 개인의 땀방울과 그것으로 이루어진 평온하게 빛나는 거룩한 미소는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우리 인생의 참모습이 아닐까?

<사단법인 힐링산업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