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대리처방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졌다. 감독도 선수들도 입을 모아 “경기에는 영향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럼에도 심리적 동요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승리가 더 절실했다.

23일 잠실 NC전, 선수들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앞서 두 타석에서 잘 맞은 타구가 모두 파울 라인 바깥으로 벗어나 아쉬움이 남았던 주장 양석환이 6회 세 번째 타석에선 기술적인 타격으로 역전타를 때렸다. 리그 대표적인 풀히터(pull hitter·잡아당기는 타자)인 그가 바깥쪽 공을 툭 밀어서 상대 수비를 넘겼다.

“평소처럼 경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중견수 정수빈은 평소와 다름없는 호수비로 상대 기를 꺾었다. NC 서호철의 잘 때린 공을 연신 걷어내며 선발 등판한 신인 최준호를 도왔다.

FA 보상선수로 NC에서 이적한 유격수 박준영은 빠른 판단과 좋은 송구로 실점 위기를 막았다. 8회 1사 3루에서 유격수 땅볼을 잡아낸 뒤 강하게 홈으로 공을 던져 NC 주자 김주원을 잡아냈다.

겨우 고비를 넘겼는데, 더 큰 위기가 닥쳤다. 4-2로 앞선 9회초 순식간에 주자 만루가 됐다. 다잡은 듯 경기를 내줄 뻔한 위기. 지난해 두산의 9회를 책임졌던 베테랑 불펜 홍건희가 마운드 위에 올랐다. 포수 마스크는 이적생 김기연이 썼다. 선발 포수 양의지가 앞선 수비에서 파울 타구에 손목을 맞고 나가며 급하게 투입됐다.

희생플라이로 1점 차 추격을 허용했고, 자동고의사구로 다시 1사 만루 위기. 말 그대로 김기연의 투혼이 빛났다. 권희동의 내야 땅볼을 잡은 1루수 강승호의 홈 송구가 다소 부정확했다. 원바운드 후 김기연의 목젖을 강타했다. 김기연은 순간 휘청이면서도 공을 놓지 않았고, 그대로 홈을 밟아 포스 아웃을 만들었다. 파트너의 도움으로 동점 위기를 넘긴 홍건희는 2사 후 국내 최고의 교타자 손아섭을 풀카운트 승부 끝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4-3 팀 승리를 지켰다. 이승엽 감독은 “홍건희가 팀 승리를 지켰다. 정말 고생 많았다”고 칭찬했다. 김기연의 투혼도 잊지 않았다. 이 감독은 “목에 공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홈플레이트를 밟아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포수 김기연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왕조 시절 두산은 위기마다 더 강해지는 팀이었다. 팀 전력도 탄탄했지만, 고비마다 나오는 특유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뜻하지 않은 돌발 악재에 팀 전체가 휘청일 수 있는 상황, 어느 때보다 그 집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신만고 속에서도 두산은 그 첫 단추를 잘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