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은 “과거 해태 선수들은 각자 정신력이 강했던 게 아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스타들이 가득한 해태라는 팀이 생존을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도록 구성원들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름만 들어도 주눅들게하는 선배들이 운동을 더 열심히 했다. 경기 전 훈련할 때는 그들이 자기 몫을 다 치고도 배팅케이지를 비워주지 않아 훈련하지 못하는 후배들도 많았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훈련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밖에 못 치거나 다른 곳에 가서 몰래 숨어 연습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근성과 오기를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술과 낭만(?)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 해태가 서울로 원정경기를 가게 되면 일부선수들은 야간경기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 무렵 꼭 선배들의 전화를 받았다. 자다 일어나 끌려가듯 달려간 곳은 대부분 고급 술집. 선배들은 후배에게 술 한 잔을 권하며 노래 좀 불러보라고 시키고는 금세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게 끝이다.

해태 전성기를 경험한 한 은퇴선수는 “경기 끝나고 자려고 누웠는데 불러서 나가면 노래 두어곡 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정말 속이 뒤집어지고 자존심이 상했다. 동시에 ‘두고 봐라. 나도 꼭 성공할거다’는 오기 같은 것도 생겼다. ‘될 놈’과 ‘안 될 놈’을 선배들은 그렇게 구별했던 것 같다. 선배들이 밉다가도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내 자식에게는 절대 가난과 무식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의지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듯, 목표는 지극히 현실적일 때 가장 구체적으로 발전한다.

결국 해태에서도 치열한 경쟁과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을 통해 자연스럽게 근성과 팀워크가 따라온 셈이다. 진짜 타이거즈 정신은 가장 현실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