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을 그리도 심하게 굴리게 될줄 몰랐어요.”

영화 <코리아>(감독 문현성)의 배우 훈련을 맡았던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은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말했다. 다음달 개봉하는 <코리아>는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 단일팀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현 감독은 영화 속에서 ‘현정화’ 역을 맡은 하지원과 ‘리분희’ 역의 배두나를 비롯해 최윤영, 한예리 등 탁구선수로 분한 여배우들을 지도했다. 출연 배우들은 3~4개월간 안양농심체육관에서 탁구훈련을 받았다. 에어로빅, 복싱, 검술, 스킨스쿠버 등 작품마다 새로운 도전해왔던 하지원마저도 탁구를 가장 어려운 종목으로 꼽았을 만큼 고된 훈련이었다.

현 감독은 “여배우들이 탁구를 배우는 것 자체도 어려워 했지만 손을 바꿔야 하는 이중고 탓에 더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이날 현 감독이 수제자 격으로 꼽은 배두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 2년 간 탁구를 배워 기본기를 갖췄음에도 왼손잡이 리분희 선수를 맡아 손을 바꾸느라 고생이 많았다. 왼손으로 라켓을 잡고 공을 치는 것도 힘든데 선수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유순복’ 선수를 연기한 한예리는 오른손으로 바꾸느라 고생했다.

다른 배우들보다 늦게 훈련에 합류한 최윤영(최연정 역)은 노력한 만큼 실력이 빨리 늘지 않아 마음 고생을 했다.

현 감독은 “여러 감독들이 붙어서 최윤영씨를 가르쳤는데, 여배우라고 배려하기는커녕 선수보다 더 혹독하게 가르쳤다”고 말했다. 최윤영은 “연습을 많이 해도 몸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고생했다. 그럴때마다 강희찬 감독(국가대표 여자탁구팀 감독)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100개 더 치세요’ ‘200개 치세요’라는 말 만 했다”며 웃었다. 물론 고된 훈련 끝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한창 촬영이 진행되던 8월의 삼복더위도 복병이었다. 체육관 내에 에어컨이 없는데다, 촬영 때는 소음 때문에 선풍기도 못 켰다. 현정화 감독은 “체감온도가 50도에 육박해서 선수 출신인 나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면서 “더운 날씨에 연기까지 해낸 여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채찍과 함께 당근도 주어졌다. 힘든 훈련에 지칠 때면 체육관 앞 ‘닭발집’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였다.

현 감독은 “선수들과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서로 이해할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다”면서 “하지원씨도 여기서 ‘닭발맛’을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선수들과 배우들은 이 자리를 통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 감독은 스포츠계에서 소문난 주당이다. 한예리와 최윤영은 “그때 감독님에게 ‘첫잔은 원샷’이라는 원칙을 배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