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열흘 가까이 축구팬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있는 유로 2012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흐름보다는 눈에 익숙한 전술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자국리그를 베낀 듯한 전술 운용은 리그의 경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스페인은 바르샤, 이탈리아는 유벤투스?

세계최강 스페인의 스타일을 보면 자국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의 강호 바르셀로나가 떠오른다. 이번 대회에서 화제를 모은 ‘가짜 9번’의 존재가 그렇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의 다양한 활용을 위해 선보인 이 전술은 스페인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옵션이다. 다소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세스크 파브레가스(바르셀로나)를 메시의 대역으로 내세워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지금껏 스페인 축구를 상징했던 원톱 전술도 사실 바르셀로나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다비드 비야(바르셀로나)를 최전방에 세워 정교한 패스 축구로 상대를 제압했던 것 역시 바르셀로나와 판박이나 다름없다. 이번 대회에서는 비야가 부상으로 이탈해 페르난도 토레스(첼시)가 공격의 첨단을 맡고 있지만 바르셀로나 축구의 향기는 여전하다.

이탈리아는 세리에A 역대 세번째 무패 우승을 차지한 유벤투스로 빼다박았다. 유벤투스 수비의 주축인 지오르지오 키엘리니와 레오나르도 보누치, 안드레아 바르찰리 등이 중심축을 잡으면서 필요에 따라 스리백과 포백을 오가며 상대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카테나치오(빗장수비)’의 완성도가 한층 물이 올랐다.

잉글랜드대표팀도 유럽 챔피언스리그 정상을 밟은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전술을 옮겨놓은 듯 하다. 첼시 출신 수비수는 존 테리와 애슐리 콜이 전부이지만 그 기조는 똑같다. 페널티지역에 수비를 두 줄로 촘촘히 심는 플랫폼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했다. 극단적인 수비 탓에 재미없는 축구라는 혹평도 받지만 실리적인 효과도 보고 있다.

축구 전문가들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훈련시간이 짧은 국가대표가 자국리그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라며 “각국이 최고의 선수들을 뽑으면서 조직력까지 갖추려면 결국 그 팀들의 전술을 차용해야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도 “자국리그가 성공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모델’이 됐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바르셀로나는 세계축구의 이상점이 됐고, 첼시는 토너먼트에서 효율적인 축구로 정상을 밟았다”고 말했다.

■지향점은 자국리그의 성공

자국리그의 축구 컬러가 대표팀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약팀들에게도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는 개최국이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유로 2004에서 자국축구의 힘을 보여줬던 그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상업적으로 큰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자국 선수들이 리그에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대로 네덜란드의 몰락은 자국리그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 볼 수도 있다.

김대길 스포츠경향 해설위원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체력과 기술 그리고 조직력이다. 국가대표팀이 오랜 시간이 필요한 조직력을 쌓으려면 결국 자국리그에서 성장한 선수들을 중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개최국인 폴란드와 해외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부분인 네덜란드의 실패는 결국 이 부분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내지 못하면, 자국리그의 성공이 국제대회로 연결되는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