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다시 나에게 찾아온 결전의 날. 반갑다. 또 도전할게. 잘 해보자!”

긴장과 부담으로 가득했을 결전의 그날을 앞두고도 ‘빙속 여제’는 차분히 자신과 한 번 더 약속했다. 차가운 얼음마저 뜨겁게 달궈버리기에 충분했던 그 배짱과 승부욕으로 ‘빙속 여제’는 결국 그 약속을 지켜냈다. 그제서야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이상화(25·서울시청)가 밴쿠버에 이어 소치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2연패 위업을 이뤄냈다. 남녀 통틀어 아시아 최초 올림픽 2연패, 올림픽 신기록까지 함께 하며 대한민국에 소치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겼다.

이상화는 12일 새벽(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경기장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1·2차 합계 74초70을 기록,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2위 올가 팟쿨리나(러시아·75초06)와 3위 마르곳 부르(네덜란드·75초48)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4년 전 밴쿠버에서 합계 76초090으로 첫 금메달을 따냈던 이상화는 이로써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1992·1994년)와 캐나다의 카트리오나 르메이돈(1998·2002년)에 이어 올림픽 역사상 세번째로 이 종목 2연패를 달성한 선수로 이름을 새기게 됐다.

경기장 빙질이 좋지 않아 지난해에만 4차례 경신했던 자신의 세계기록(36초36)을 경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2차 레이스에서 37초28로 종전 올림픽 기록(37초30)을 경신해 합계 기록에서도 올림픽 기록을 다시 세웠다.

4년 전 밴쿠버에서 이상화와 메달을 다퉜던 예니 볼프(독일)와 왕베이싱(중국)은 더 이상 적수가 아니었다. 볼프는 6위(75초67), 왕베이싱은 7위(75초68)로 처졌다.

밴쿠버에서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던 이상화는 4년 전과는 차원이 다른, 완벽한 세계 1인자가 된 채 소치 빙판 위에 섰다.

1차 레이스 기록은 37초42. 가장 마지막 조인 18조에서 브리타니 보우(미국)와 함께 뛴 이상화는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확실히 ‘여제’다운 기세를 뽐내며 레이스를 압도했다.

8조에서 뛴 장홍이 의외로 좋은 기록을 내며 계속 1위를 지켰고 팟쿨리나가 16조에서야 그 기록을 넘어설 정도로 기존 상위권 선수들이 부진했다. 그러나 이상화는 빛났다.

초반 100m를 전체 선수 가운데 가장 빠른 10초33에 통과하며 치고 나간 이상화는 아웃코스에서 인코스로 이동할 때 인코스에서 밖으로 빠지던 보우를 오히려 앞설 정도로 초반부터 차이를 벌린 끝에 1위를 기록했다.

2차 레이스에서도 마지막 17조에서 왕베이싱과 함께 레이스를 펼쳤다. 인코스에서 출발한 이상화는 1차 레이스보다 훨씬 빠른 10초17에 초반 100m를 통과했다. 기존 경쟁자들이 부진한 가운데 새로운 적수 팟쿨리나가 바로 앞 조에서 좋은 기록을 세웠지만 이상화는 전혀 흔들림 없이 끝까지 자신의 페이스로 힘차게 질주했다.

1차 레이스보다 0.14초 빠른 37초28로 결승점을 통과, 새로운 올림픽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그리고 세계 스피드스케이팅 역사를 새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