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에 실패하고도 전쟁에서 이겼다. 때론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질 때도 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언제나 믿을 수 없는 매직이 발생하기도 한다. 단판 승부에는 의외성이 넘쳐나기에 짜릿함을 더한다. 그래서 축구는 재미있다.

성남FC가 시민구단 재창단 첫해에 세간의 예상을 뒤집고 짜릿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성남은 2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의 2014 FA컵 결승전에서 연장 120분 혈투 끝에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겼다. 연장 후반 막판 교체하려고 했으나 볼이 아웃되지 않아 그대로 골문을 지킨 골키퍼 박준혁이 2개의 슈팅을 막아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로써 성남은 2011년 성남 일화 시절 FA컵 우승 이후 3년 만에 정상 탈환하면서 통산 세 차례(2014년·2011년·1999년) 우승을 차지했다. 성남은 상금 2억원과 함께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따내는 기쁨을 맛봤다.

성남은 비록 리그에서는 11위로 강등권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시민구단 창단 첫해 뜻깊은 우승컵을 안아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게 됐다. 성남 승리의 일등공신인 골키퍼 박준혁은 MVP에 선정됐다. 반면 1998년 이후 16년 만에 FA컵 우승에 도전한 서울은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승부차기에서 패해 올시즌 무관에 그치게 됐다. 리그 4위인 서울이 내년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려면 정규리그 남은 2경기에서 3위에 올라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누가 봐도 서울의 우세가 예상된 경기였다. 성남 김학범 감독조차 지난 20일 미디어데이에서 “100명에게 FA컵 우승팀을 묻는다면 99명이 성남이 아닌 서울이라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객관적 전력에서 우위에 있는 데다 홈경기의 이점을 안고 있는 서울이 손쉽게 이길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전반 초반부터 성남이 강하게 밀어부치면서 이변의 서막을 열었다. 수비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한 성남이 예상 외로 수비 라인을 올려 강하게 압박하고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축구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성남의 공세에 당황하던 서울은 전반 22분 결정적인 선제골 기회를 놓친 게 아쉬웠다. 성남 골키퍼 박준혁이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투입된 볼을 잡으려다 놓친 볼을 에스쿠데로가 재빨리 빼앗아 골대를 향해 차넣었지만 성남의 수비수 곽해성이 몸을 날려 막아냈다. 이후 수비쪽에 치중한 성남은 서울의 공세를 잘 차단했다. 서울은 후반 36분에는 김진규의 헤딩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는 ‘골대 불운’까지 겹쳤다. 전·후반 90분 동안 득점에 실패한 서울과 성남은 결국 연장 혈투로 접어들었지만 소득 없이 피를 말리는 승부차기에 접어들었다.

서울은 연장 후반 종료 3분을 남기고 김용대 대신 승부차기에 강한 유상훈을 교체 투입했다. 성남 역시 연장 후반 종료 직전 박진혁을 전상욱으로 교체하려고 시도했지만 볼이 아웃되지 않는 통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승부의 여신은 성남쪽에 서있었다. 어쩔수 없이 골문을 지킨 성남 골키퍼 박준혁은 서울의 첫 키커 오스마르와 세 번째 키커 몰리나의 슈팅을 막아내 4-2 승리의 주역이 됐다. 성남 김학범 감독은 승리가 확정되자 그라운드 안으로 뛰어들어가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을 나누며 우승의 감격을 함께 나눴다.

성남 김학범 감독은 “골키퍼 교체가 뜻대로 안됐지만 박준혁이 몸이 빨라서 믿고 있었다. 시민구단 첫 출발하는 해에 결실을 맺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