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2015달러.

기대값이 높았던 탓에 단번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시아 야수들이 포스팅(비공개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던 이력과 올겨울 국내 프로야구 좌완들이 포스팅을 거쳐 유턴한 사실들을 고려하면 꽤 당당한 액수로 평가받고 있다.

강정호(27·넥센)가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눈앞까지 당겨놨다. 그가 국내프로야구에 남기는 것은 포스팅을 통한 야수 첫 메이저리그 진출 역사만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강정호는 성공적인 ‘포스팅 결과’를 얻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남겨놨다.

■준비성

앞선 포스팅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김광현(SK)과 양현종(KIA)에 비해 강정호는 준비기간이 길었고 준비과정도 충실했다. 셋 중 포스팅 준비가 가장 늦었던 양현종을 두고 “내년 이후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미루라”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준비 부족 상황 때문이었다.

김광현은 200만달러, 양현종은 150만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의 포스팅 액수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적지 않은 현지 스카우트들이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선수에 베팅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포스팅을 통해 투자할 정도의 선수라면 해당 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여러 차례 확인하고, 에이전트와 다양한 루트를 통한 정보를 취합한 뒤 최종 베팅 단계에 이른다.

강정호는 에이전트 엘런 네로와 계약해 해외 진출 자격을 얻는 올해 말을 기다렸다. 구단의 지원도 확실했다.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와 염경엽 감독은 지난 시즌 중에도 강정호의 미국 진출을 도울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염 감독은 강정호의 포스팅 액수를 1000만달러까지 기대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울 유격수를 낙점해놓기도 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를 향한 메시지가 되기도 했다.

■내구성

건강에서 비롯되는 ‘꾸준함’은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주요 근거가 된다. 류현진(LA 다저스)은 2012년말 2573만달러에 이르는 포스팅 금액을 원소속 구단 한화에 남기고 태평양을 건넜다. 포지션은 달라도 강정호가 류현진과 흡사한 점이 있다면 일종의 ‘내구성’이다.

류현진이 2006년 한화 입단 뒤 2012년까지 큰 기복 없는 7년을 보냈듯 강정호도 2008년 히어로즈에서 비로소 주전으로 발돋움한 뒤 크게 기우는 시즌 없이 마라토너처럼 달려왔다. 2009년부터 2년간 전 경기(133경기)를 뛴 뒤로 117경기를 소화한 올해를 그 중 가장 적게 움직인 시즌으로 남겼을 만큼 내구성이 뛰어났다. 팀당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인 야수가 풀타임 소화가 될지는 또 한번 확인해야 할 포인트다. 다만 강정호는 지난 이력을 통해 ‘메이저리거급 내구성’을 갖출 수 있는가능성만은 확실히 보였다.

■시장성

포스팅을 할 때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 메이저리그 시장 상황에 따라 선수 수요자인 구단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구단의 새 유니폼을 입은 뒤 기존 포지션인 유격수로 뛸지 아니면, 2루수 또는 3루수로 이동할지는 아직 단정지을 수 없다. 다만 메이저리그는 올겨울 유격수뿐 아니라 내야수 기근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가 올해 은퇴를 선언한 것을 기점으로 대형 유격수가 좀체 나오지 않는 데다 내야진 역시 선명히 갖추고 있는 팀이 없다.

류현진이 뛰고 있는 LA 다저스 역시 상징적으로 움직임이 컸댜. 유격수 핸리 라미레스와 2루수 디 고든 등 기존 키스톤 듀오를 모두 보내고, 필라델피아에서 뛰던 베테랑 유격수 지미 롤린스를 영입하고 2루수 자리에는 이웃 구단 에이절스에서 뛰던 하위 켄드릭을 영입하는 등 변화가 많았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내야진에 변수와 빈틈이 많은 겨울에 그 곳을 찾으려 했던 강정호에게는 불리할 게 없었다. 내야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강정호에게는 긍정적 신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