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묵은 숙원을 풀기 위해 한국 축구의 수장은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관성을 타파하고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60)이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변화와 열정을 바탕으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2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안컵 최종 명단(23명)을 발표하면서 “아시안컵을 앞두고 협회가 정한 ‘변화하라’(Time for change)는 슬로건이 내 마음에도 쏙 든다”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 (결승전이 열리는)1월 31일까지 아시안컵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에 대한 의지는 슈틸리케 감독이 선택한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서 잘 묻어난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몸 상태가 나쁘거나 최근의 경기력이 떨어진다면 가차없이 칼을 빼들었다. 반면 꾸준히 경기력을 입증하고 열정을 보인다면 ‘무명’의 젊은피 중용도 주저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출전 선수 가운데 11명을 바꾸는 ‘개혁’을 단행했다.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붙박이 골잡이 박주영(29·알 샤밥)이 부진하자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는 새내기 이정협(23·상주)을 과감히 발탁했다. 많은 논란 속에도 한국 축구를 대표해온 골잡이 박주영을 제외하기란 쉽지 않았겠지만 슈틸리케는 뚝심있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박주영 소집 제외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한게 아니다. 그 선수가 얼마나 노력하고 경기장에서 보여주는가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서 6경기 연속 무득점에 허덕이며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은 박주영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한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감독으로 박주영을 뽑는 게 이정협을 선택하는 것 보다는 수월한 결정이다. 경험이 풍부한 박주영을 뽑으면 선수 본인이 책임을 지겠지만, 반대로 이정협은 감독인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55년간 한국 축구가 걸어왔던 길이 우승까지 이끌지 못했다면 변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박주영이 나머지 공격수들과 비슷한 성향이라는 것도 고려했다. 이동국(35·전북)·김신욱(26·울산)이 부상으로 빠져 타깃형 공격수가 없는 상황에서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가능성을 보인 이정협이 전술적인 활용도가 더욱 높을 것으로 생각했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처음 태극마크를 단 한교원(24·전북)도 아시안컵까지 승선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술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한교원은 열정이 넘치는 선수다. 이런 선수가 대표팀 내 좋은 분위기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한다”고 말했다. 열정을 갖춘 젊은피의 가능성과 그로 인한 팀 분위기까지 기대한 것이다.

또 슈틸리케 감독은 과감한 멀티 플레이어를 활용해 팀 전력을 극대화할 뜻을 밝혔다. 왼쪽 풀백인 박주호(27·마인츠)와 중앙 수비수 장현수(23·광저우 푸리)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고, 기성용(25·스완지시티)과 이명주(24·알 아인)는 미드필더로는 모든 포지션에서 기용될 수 있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처럼 큰 대회에선 멀티 플레이어가 얼마나 많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마지막으로 축구팬에게 한가지 약속을 했다. “축구인으로 40년 넘게 생활했다. 대회에서 제일 잘 하는 팀이 우승을 한다고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우리 선수뿐 아니라 코칭스태프와 지원스태프 모두는 우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은 드릴 수 있다.”

과감한 변화와 진정성을 앞세워 아시안컵 항해에 나서는 슈틸리케호의 야심찬 도전이 출발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