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걸었다. 힘없이 믹스트존(공동 취재 구역)에 들어왔을 때, 이미 눈가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

손흥민(23·레버쿠젠)도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동료들이 연장까지 치른 120분 혈투 내내 다리에 쥐가 날 때까지 뛰면서 최선을 다해줬다. (차)두리 형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겼으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텐데, 그게 아니라 아쉽다”고 덧붙일 때는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27년 만에 반복된 준우승. 개최국 호주와 아시안컵 결승에서 맞붙은 2015년 1월31일은 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됐다.

지옥과 천당을 오고갔다. 전·후반을 넘어 연장까지 치른 120분. 손흥민의 시작은 좋지 못했다. 상대 미드필더 마일 예디낙(크리스털 팰리스)의 거친 몸싸움에 휘둘리더니 경기 초반 득점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그사이 호주가 전반 45분 선제골을 터뜨리면서 한국 축구도 휘청였다.

손흥민이 살아난 것은 득점이 간절히 필요했던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은 팀 동료인 기성용(스완지시티)이 내준 공을 잡아챈 뒤 수비수 셋을 제치며 호주의 골문을 열었다. 손흥민이 관중석을 향해 달려나간 순간 이국 땅에서 대형 태극기가 떠올랐다.

그러나 연장으로 넘어간 승부는 집중력이 가늘어진 찰나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1-2 석패로 끝나고 말았다. 손흥민은 “한 골을 넣으면서 기적을 바랐는데, 우승까지 바라기에는 우리가 너무 어렸다”고 고개를 떨궜다.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한국은 아시안컵 내내 화제의 팀이었다. 조별리그 초반 주축 선수인 구자철(26·마인츠)과 이청용(27·볼턴)이 부상으로 귀국길에 올라 고전했으나, 이후 무실점으로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1-0으로 한 차례 이겼던 호주. 손흥민도 침묵했던 득점포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본격적으로 가동했던 터. 내심 1960년 이후 55년 만의 우승을 꿈꿨으나 거짓말처럼 지고 말았다.

손흥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결과지만 우승의 기로에서 무너진 게 너무나 원통하다”고 말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간 이날은 4년 전의 악몽이 떠올라 가슴이 더욱 아팠는지도 모른다. 당시 카타르 대회에 나섰던 ‘막내’ 손흥민은 존경하는 선배 박지성(34)과 이영표(39)의 국가대표 은퇴 무대를 위해 뛰었다. 꼭 선배들에게 우승컵을 선물하겠다는 각오였지만, 일본과 준결승에서 패하며 모든 게 물거품으로 변했다.

이날도 똑같았다. 4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막내인 손흥민은 평소 ‘삼촌’으로 부르는 차두리(35·서울)가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경기에서 우승을 별렀다. 그런데 이번엔 그 문턱에서 넘어졌다. 우승컵과 함께 헹가레를 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손흥민은 자신을 위로하는 차두리의 다독임에도 그라운드에 털썩 엎드린 채 대성통곡했다. 손흥민은 “내가 조금만 더 도움이 될 수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두리형 한테 너무 미안하다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며 다시 눈물을 머금었다.

손흥민에게 지옥과 천당을 오간 이날은 결국, 눈물로 4년 전의 각오를 되새긴 날이 됐다. 손흥민은 “난 아직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게 많다. 4년 뒤에는 달라져야 한다”며 “다음 대회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