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승리 포기않는
‘위닝 멘탈리티’

훈련땐 끊임없는 대화
경기땐 일일이 하이파이브
슈틸리케 리더십의 성과

흔히 위대한 지도자는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한국 축구도 그랬다. 불신의 대상이었던 한국 축구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61)이 지휘봉을 잡은 지 5개월 만에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브라질월드컵 당시 희미하기만 했던 투혼은 다시 살아났고, 없다던 선수는 새롭게 발굴돼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31일 개최국 호주에 아깝게 아시안컵 우승을 내준 뒤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한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이 현장의 박수갈채를 받은 배경이다.

■이름값이 아닌 실력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 취임하며 “이름값이 아닌 실력만으로 선수를 뽑겠다”고 공언했다. 허언이 아니었다. 부지런히 K리그를 돌아다니며 선수들의 면면을 확인한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향후 한국 축구를 10년간 이끌 재목들을 찾아냈다. ‘군데렐라(군대에서 온 신데렐라)’ 이정협(상주)이 대표적이다. 대회 직전까지 그 흔한 청소년대표 경험도 없던 그는 슈틸리케 감독의 발탁 아래 깜짝 활약을 펼쳤다. 아시안컵에서만 2골. 그가 없이 한국 축구의 결승행은 있을 수 없었다. 국가대표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의 중용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정성룡(수원)·김승규(울산)·이범영(부산) 등에 밀린 ‘넘버4’ 골키퍼였던 김진현은 이번 대회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주전 골키퍼로 낙점돼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비록 호주와의 결승전에선 2골을 실점했지만, 준결승까지 보여준 선방은 이 대회 최고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 밖에 이번 대회에서 이영표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한 김진수(호펜하임), 공격형 미드필더로 재능을 입증한 남태희(레퀴야) 등이 떠오른 스타들이다.

■되살아난 투혼

한국 축구는 이 대회에서 유니폼 뒤편에 새겨진 ‘투혼’이라는 글자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부족한 실력을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옛 축구가 아닌 마지막까지 승리를 포기하지 않는 투혼이었다. 대회 내내 화제를 모은 ‘늪 축구’가 여기에서 나왔다. 조별리그 초반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감기 몸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끈끈한 조직력으로 상대 선수들을 꽁꽁 묶으며 결승까지 올라갔다. 맥없이 탈락하며 비판을 받았던 브라질월드컵과는 천양지차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유럽에선 이런 걸 ‘위닝 멘털리티’라고 부른다”며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투혼이 바로 그랬다”고 말했다.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차두리(서울)도 호주와의 결승전이 끝난 뒤 “후배들이 오늘처럼만 뛰어준다면 한국 축구는 계속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통으로 다져진 신뢰

거스 히딩크 전 감독(69) 이후 한국 축구의 고민은 소통 부재였다. 국내 감독들은 권위 의식으로 비판을 받았고, 외국인 감독들은 선수들과의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로 한계를 노출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통해 강한 결속력을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1분도 뛰지 못한 골키퍼 정성룡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를 뛰지 못한 선수라면 불만을 갖게 마련이지만, 그는 훈련 내내 가장 열심히 노력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우리 훈련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정성룡이 주전 골키퍼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에 대해 손흥민(레버쿠젠)은 “감독님이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평소에도 서로 대화를 하며 맞춰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단순히 대화를 많이 나눈 것만으로 일궈낸 결과는 아니다. “벤치에 앉은 선수들도 우리의 소중한 자원”이라던 자신의 발언을 대회 내내 지켰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경기 시작 전에는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부진했던 선수도 결코 공개적인 자리에선 비판하지 않으면서 하나로 똘똘 뭉쳐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에 올라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