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백인은 점프를 못 해(White men can’t jump)>라는 제목의 미국 영화가 나온 적이 있다. 우디 해럴슨과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을 맡은 농구 영화였다. 비슷한 편견이 메이저리그에도 있었다. ‘아시아 내야수는 파워가 부족하다’, ‘다리를 들어올리는 타격폼으로는 강속구에 대응할 수 없다’ 등이다.
그 오랜 편견을 강정호(28·피츠버그)가 한 방에 깨뜨리고 부쉈다.
강정호는 4일 새벽 미국 플로리다의 오토 익스체인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 시범경기 데뷔전에서 6번 타자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강정호는 5-0으로 앞선 3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2번째 타석에 들어섰고, 토론토 우완 투수 마르코 에스트라다의 2구째 높은 속구를 받아쳐 우중간 담장 너머로 날려버렸다.
ⓒGettyimages/멀티비츠
이 한 방은 과거 메이저리그가 아시아 선수들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날려 버리는 한 방이었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릴 때 미국 현지에서는 ‘한국의 장타력이 과연 미국에서도 통할까’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 내야수들의 장타력은 급감했다.
이와무라 아키노리는 야쿠르트 시절이던 2004년 44홈런을 때렸다. 2006년까지 3시즌 동안 홈런 106개를 때렸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이와무라의 홈런은 4시즌 동안 16개에 그쳤다. 니시오카 쓰요시 역시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일본 프로야구에서 3시즌 동안 매년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 38개를 때렸지만 미네소타에서 뛴 2시즌 71경기에서 홈런은 1개도 없었다.
이제 시범경기 한 경기일 뿐이지만 강정호가 데뷔 첫 경기에서 보여 준 홈런은 미국 전체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MLB닷컴은 이날 강정호의 홈런을 ‘가장 큰 이슈’로 꼽았다. 무엇보다 운 좋게 타이밍에 걸린 홈런이 아니라 힘과 기술이 모두 갖춰져야 나올 수 있는 ‘밀어친 홈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컸다. CBS스포츠는 강정호의 홈런 영상을 소개하며 “밀어 넘긴 강정호의 홈런을 주목하라”고 평했다.
강정호의 타격폼을 둘러싼 회의적 시선도 한 방으로 모두 잠재웠다. 강정호가 타격할 때 투수 쪽을 향한 왼 발을 높이 들어올리는 동작을 두고 미국 현지에서는 “메이저리그의 강속구에 대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강정호는 이같은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타격폼을 고수했고 다리를 들어올리는 타격 폼으로 에스트라다의 빠른 속구에 전혀 밀리지 않은 채 우중간 담장을 넘겨 버렸다. CBS스포츠는 “레그킥(타격할 때 왼발을 크게 들었다 내리는 동작)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강정호는 첫 시범경기에서 밀어쳐 홈런을 날리며 이런 시각을 일축했다”고 평가했다.
강정호는 이날 수비실력에 대한 우려도 지웠다. 강정호는 1회 러셀 마틴과 호세 바티스타의 유격수 땅볼을 깔끔하게 처리했고, 2회 무사 1루에서 조시 도널슨의 타구는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 플레이로 연결했다.
피츠버그의 클린트 허들 감독은 “우중간 담장을 넘긴 것은 아주 좋은 스윙이었다”며 타격을 칭찬했고 수비에 대해서도 “유격수로서 안정적이었다. 2회 무사 1루 병살 플레이는 훌륭했다”고 말했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자신을 향한, 아시아 야구를 향한 편견을 싹 지웠다. 이제 겨우 한 경기일 뿐이지만, 의미가 아주 큰 경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