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쌓아가면 인상도 여유로워진다고들 한다. 배우 류승룡이 그랬다. 한마디 한마디가 온화한 온도를 띠고 있었다. OTT플랫폼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감독 이병헌)으로 호흡한 후배 안재홍에 대한 칭찬을 할 때에도 위트와 진정성을 넘나든다.

“안재홍이란 배우는 전작만 봐도 엄청난 기량이 보여요. 센서가 엄청 예민하게 반응하는 배우죠. 리액션은 물론 제게 알맞은 액션도 줘요. 절 그만큼 파악한 거죠. 더할 나위가 없었어요. 이런 상대 배우를 만난다는 건 제게도 큰 행운이죠. 약속하지 않아도 티키타카가 맞아서 경이로운 순간도 많았어요. 제 연기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면 훌륭한 배우 안재홍처럼 되고 싶어요. 몰입도, 캐릭터를 구현해내는 집요함 모두 존경스럽거든요. 사랑스럽기도 하고요. 전 안재홍을 한번도 후배, 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동료 그 자체였죠. 그런데 가만있자, 안재홍도 절 선배로 생각 안 하는 건 아닐까요? 하하.”

류승룡은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극한직업’ 이후 ‘닭강정’으로 이병헌 감독과 재회한 소감, 코믹 연기에 대한 소신, 젊은 창자작들과 소통·도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들려줬다.

■“코믹 연기 어려워, 항상 고민하죠”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녀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의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극한직업’ 이후 이병헌 감독과 또 한 번 손을 잡고 대중의 배꼽 사냥을 노린다.

“닭강정을 변한 딸을 구하러 간다니, 참 아이디어가 독특하더라고요. 도전인 것 같아서 굉장히 반가웠어요. 물론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라 진입 장벽이 있을 순 있지만 그걸 감안하고 봐도 저에겐 굉장히 ‘극호’인 작품이었죠. 이야기가 주는 큰 대의가 있었거든요. 젊은이들의 로맨틱 코미디, 부성애, 그리고 나아가 인류애도 있고요. 외계인과 조선 시대 이야기, 좀비새, 라바까지 그런 소재들을 절묘하게 조율하려고 감독이 많이 노력하려고 한 것 같아요.”

그 어느 연기보다도 어려운 게 코믹 연기다. 남을 웃기려는 의도가 발각되는 순간 머쓱해져버리기 때문에 그 선타기를 잘 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류승룡은 아주 아슬아슬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선을 잘 지킨다.

“항상 고민하죠. 어떤 장르보다도 피로감 많고 싫증도 많이 느끼니까요. 막 웃기려는데 관객이 안 웃으면 따귀 맞는 느낌까지 나거든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요. 웃음을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현장이라서 조금이라도 누수되지 않도록 리허설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진지하게 임해야 했고요. 그래야 본 촬영할 때에 진짜 웃음이 탁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더 어려웠던 건 상대 배우들의 코믹 연기를 보면서 ‘웃음을 참는 것’이었다고.

“클라이막스에서 외계인들과 대치할 때 ‘미사일’ 외치는 건 그나마 참을 만 했거든요. 근데 갑자기 ‘핵’을 외치는데 터질 뻔 했고, ‘사슴’을 외칠 땐 무서웠어요. 점점 다가오길래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더라고요. 그리고 ‘BTS’ 외칠 때 제가 ‘와씨, 따라할 뻔 했네’라고 읊조리는데 애드리브였어요. 알아서 튀어나온 걸 이병헌 감독이 그대로 썼더라고요.”

■“배우로서 목표? 정상이 아닌 종주하는 것”

그의 요즘 화두는 ‘도전’이다. ‘닭강정’도 그랬고, 지난달 열렸던 류덕환의 영상 전시 ‘논펀저블(NONFUNGIBLE): 대체불가한 당신의 이야기’에 참여한 것도 그랬다. ‘작품의 탄생에 적극 참여하는 배우에게는 저작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인터뷰를 통해 배우들의 고유한 서사를 발견하고, 그를 바탕으로 기록 당사자에게 저작권이 부여되는 영상을 제작한다. 류승룡도 그의 인터뷰에 응한 바 있다.

“배우라는 직업은 설계도에 살을 붙이는 구실을 하잖아요. 작가처럼 자신이 구현해내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채널이 많지 않죠. 배우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작품 선택 정도랄까. 그래서 저도 내 생각을 구현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목각 소품도 만들고 NGO 활동도 하곤 했어요. 그런데 류덕환이 저와 같은 생각을 얘기하더라고요. 아주 성황리에 치러졌고요. 그게 시발점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장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이병헌 감독과 함께하는 시간도 도전이라는 면에서 늘 그를 충족시키는 작업이었다.

“이병헌 감독은 실제로도 진지한데 엉뚱해요. 유기견을 반려견 삼아 애지중지 키우는 착한 심성도 있고요. 실제 시사회 땐 업계 지인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도 응원차 오더라고요. 영화제 때 이병헌 감독 방에서 숙박 못잡은 배우들 6명이 나오는 걸 보기도 했고요. 그만큼 사람들과 연을 맺으면 계속 가는 사람이에요. 내면에 깔린 인간애를 저는 봤죠. 그의 도전에 제가 조금이라도 동력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 환영할 생각이 있습니다.”

배우로서 앞으로의 방향성도 명확했다.

“저는 배우로서 나아가는 길이 정상을 향한 등산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종주하는 거죠. 지금도 어디론가 향해 가고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쯤 여기가 어디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계속 가던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