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은 괜찮은 성과를 냈다. 무엇보다 최종목표인 월드컵 16강을 이끌었다. 부임 전후 한국 랭킹을 30단계 정도 끌어올렸다. 월드컵 본선 진출권도 크게 어렵지 않게 따냈다. 대표팀 내부 잡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절대 존재감을 가진 손흥민, 김민재가 중심을 굳게 잡았다. 팀을 저해할 만한 행동과 발언을 한 선수도 없었다. 외국 코치진 중심으로 팀이 운영된 데 대한 국내 코치진 불만도 노출되지 않았다.

벤투호는 역대 월드컵 멤버 중 최강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26명 중 유럽파가 8명이나 됐다. 그중 7명은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 톱5 리그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도, 세계 정상급 수비수도 있다. 중동파, 중국, 일본까지 포함하면 해외파는 12명이다. 주전급 선수 개인 기량이 뛰어났고 경험도 많았으며 도전정신도 강했다. 그래서 한국은 카타르에서 주눅 들거나 떨지 않았다.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했다. 아주 고무적 현상이다.

벤투 감독은 해외파를 무척 선호했다. 부임 이래 그들에게 주전 기회를 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프로리그에서 부진해도, 굳이 해외파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국내파 또는 후보급에게 선발 기회를 줄 만한데도 벤투 감독은 해외파를 계속 썼다. 해외파를 계속 뽑아 선발 기회를 주는 것은 감독이 할 수 있는 가장 수월한 선택이다. 그게 벤투식 철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집과 한계였다.

벤투호는 빌드업 축구를 ‘추구’했다. 아시아 국가를 상대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세계 정상 팀, 기술이 좋은 팀과 맞서서는 그렇지 못했다. 빌드업을 하려고 노력했고 간간이 괜찮은 플레이도 나왔지만, 경기 내내 빌드업 축구가 핵심은 아니었다. 빌드업을 추구한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월드컵에서만큼은 빌드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빌드업은 감독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빌드업 축구는 모든 선수, 특히 수비진, 심지어 골키퍼까지 상대 압박 속에서 볼을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상대가 누구든 항상 빌드업 축구를 할 수 있는 팀은 세계 정상 팀뿐이다. 어쨌든 한국이 쇼트패스 위주 팀 플레이를 추구한 것은 잘한 선택이다.

한국 체력은 강했다. 4경기를 치르면서 상대보다 덜 뛴 경기는 가나전(그것도 겨우 100m 덜 뛰었다)뿐이다. 상대적으로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면서도 우리 선수들은 더 많이, 더 멀리 달렸다. 힘든 경기가 이어지면서 피곤함은 드러났다.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기 마련이다.

벤투에게는 4년이 오롯이 주어졌다. 일본에 완패할 때도, 강호에 대패했을 때도 교체 목소리는 미비했다. 그렇게 보장된 4년이 성공의 밑거름이었다. 한국이 과거 월드컵과 다른 것은 감독 교체, 심지어 교체 논란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대표팀은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한다. 2026년 월드컵에서 아시아에 주어진 진출권은 8장이다. 한국으로서는 월드컵 본선 진출권 확보에 대해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번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더 안정적으로 보장될 만한 환경이다. 차기 감독이 누가 될지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4년이라는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