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영화 <일단 뛰어> 이후 10년, 배우 임정은(31)은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시간’ 동안 배우로 살았다. 많은 것이 바뀌는 동안 임정은 그 스스로도 조금씩 변했다. 생전 처음 카메라 앞에서 짙은 아이라인을 그렸던 드라마 <적도의 남자> 수미를 지나, 영화 <음치클리닉>의 보라로 살고있는 임정은의 연기생활 10년, 닫힘에서 열림으로, 조급함에서 여유로 돌아온 세월이었다.

<적도의 남자>를 끝낸 그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다시 김진영 감독의 <음치클리닉>에 매달렸다. 종영 이후 틈틈이 언론 인터뷰를 하고 화보도 찍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스케줄은 역시 영화다.

윤상현, 박하선과 함께 출연한다. 극중에서는 박하선의 친구 보라 역을 맡았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데 극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은 아니지만 한 번도 안 해본 캐릭터예요. 하선씨가 맡은 동주가 좋아하는 사람이 절 좋아하죠. 맹한 구석도 있지만 흔히 옆에 있을 것 같은 친근한 인물이예요.”

하고 싶은 역을 위해 비중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 그는 “솔직히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성적’ ‘소극적’ ‘수동적’인 사람. 임정은이 과거의 자신을 묘사한 형용사들이다. 지금에야 다 털어냈지만, 지난 10년 아쉬운 순간이 많아 보였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도 참았던 것 같아요. 노출이 많은 화보를 찍으면서 ‘벗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드라마 캐릭터와 진짜 모습을 대중들이 동일하게 볼 때도 참기만 했어요. 내색 안 하고 혼자 생각해서 결정하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적도의 남자> 최수미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신예 박세영의 연기가 있었지만 임정은에게 독한 수미는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그동안 가졌던 청순한 이미지를 벗어내야 했고, 열등감과 사랑 그리고 욕심이 뒤섞인 수미의 에너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사실 초반에는 캐릭터를 못 잡아서 힘이 빠져있었어요. 아예 15년 후 돌아오는 수미에 힘을 주자는 생각만 하기도 했죠. 성공한 수미를 표현할 때는 매 장면마다 손톱색도 바꾸고 최대한 화려해서 안쓰러운 수미에 맞추자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김인영 작가가 모바일 메신저로 힘을 많이 줬다고 했다.

임정은이 ‘수미’를 잘 입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벌레같이 바라보는’ 이준혁(이장일 역)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준혁은 극중 임정은을 깔보기 위해 실제로도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다. 임정은은 “그것이 몰입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연기가 편했다”며 “키스신도 있었지만 찍고 나서 끝이었다. 다시 데면데면해졌다”고 웃었다.

지난 10년을 돌이키며 임정은은 ‘나를 변하게 한 한 순간’으로 3년 전 떠난 캐나다 여행을 꼽았다.

“혼자 갔어요. 3개월 동안 학원도 다니고, 도서관도 가고, 여행도 가고 평범하게 지냈어요. 오랜만에 찾아온 평범한 생활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스무살 어릴 때 데뷔해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할 여유없이 보내왔거든요.”

그런데 “캐나다에서 어느새 작은 부분을 보이고, 오감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귀국 이후 연기에서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구나’ 느꼈어요“

수미는 달라진 임정은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수미를 시작으로 연기 폭을 넓혔고 더 넓은 무엇을 갈망하게 됐다. 여유가 생기자 결혼에도 마음이 열렸다. 서른다섯 전에는 반드시 결혼할 생각이지만 지금은 애견 ‘소풍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여유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단다.

“전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수미를 보고 새롭게 생긴 팬들도 계세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요. 앞으로 제 다른 연기도 부담없이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