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그 어디서 들려오나/ 귀뚜라미 우는 소리….’

‘오동잎’ 등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 최헌씨가 10일 오전 2시15분 별세했다. 향년 64세. 지난해 6월 식도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고인의 유족인 조카 배병두 씨는 10일 오후 스포츠경향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6월 수술 뒤 호전돼 건강을 되찾아 가던 중이었다”며 “3~4개월 전 암세포가 전이 되면서 재입원했고, 이후 상황이 악화돼 이날 세상을 떠나셨다”고 말했다.

1948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명지대 경영학과 재학 중 미8군 무대에 서는 것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고인의 이름 두 자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것은 1970년 전국보컬그룹경연대회 1등을 차지했던 인기 록밴드 ‘히식스’(He6)의 보컬리스토로 영입되면서다. 당시 기타리스트 김홍탁씨가 이끌던 ‘히식스’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소유한 고인을 스카우트 한 뒤 ‘초원의 빛’ 등 유명 히트곡을 잇달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뒀다.

고인은 1970년대 그룹사운드 백가쟁명기를 이끌어갔던 주역이었다. 1974년 ‘검은 나비’를 결성해 노래 ‘당신은 몰라’를, 1976년에는 ‘호랑나비’를 만들어 고인의 대표곡이 된 ‘오동잎’ 등을 세상에 소개했다.

1977년부터는 솔로가수로 변신했다. 대부분 록 감성을 기초로 제작된 진한 발라드곡이었다. ‘구름 나그네’, ‘앵두’, ‘가을비 우산속’ 등의 노래가 크게 사랑받았다. 1979년에는 ‘가을비 우산속’을 주제곡으로 하는 석래명 감독의 동명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밴드를 향한 열정을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쉬이 꺾이지 않았다. 1983년 다시 그룹 ‘불나비’를 결성한 그는 버티 히긴스의 ‘카사블랑카’를 번안곡으로 발표해 히트했다.

2000년대에도 음악 활동은 계속됐다. 2003년 11곡이 수록된 앨범 <하이 서울 하이 서울>을, 2006년에는 드라마 음악감독 지평권씨와 손잡고 싱글 ‘이별 뒤에 남겨진 나’를 냈다. 식도암이 발견되기 2년여전인 2009년에도 ‘울다 웃는 인생’을 발표하는 등 음악 열정을 굽히지 않았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밴드인 ‘사랑과 평화’의 보컬 이철호씨는 “그룹사운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선배였다”며 “1년여전 만났을 때에도 아직도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는 우리들을 크게 격려하고 끊임없이 음악을 하도록 용기를 주었던 분”이었다고 슬퍼했다.

히식스를 만든 김홍탁 전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은 10일 오후 “허스키한 음색과 탁성을 지녔던 (최)헌이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그룹사운드가 갖고 싶어했던 보컬이었고, 성격도, 목소리도 모두 매력적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멤버(권용남, 이영덕)들도 소식을 듣고 슬퍼하고 있고, 국내에 머무는 멤버(유상윤 조용남)들과 곧 빈소를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차려졌다.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 파크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 5시30분. 슬하에 부인 배영혜씨와 딸 서윤, 아들 호준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