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26·대한항공)이 바람과 싸우며 선두에 섰다. 그 뒤를 후배 주형준(23)과 김철민(22·이상 한국체대)이 바짝 따라붙었다. 이승훈 엉덩이에는 주형준의 손이, 주형준 엉덩이에는 막내 김철민의 손이 얹혔다. 세 명을 하나로 묶은 손은 선봉에 선 선배에 대한 후배의 감사 표시였다. 그렇게 세 명은 한 명처럼 움직였고 소치올림픽 은메달을 따냈다.

이승훈 등 3명으로 구성된 대표팀은 지난 22일 소치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에 이어 은메달을 따냈다. 한국 선수단에서 남자 선수들이 따낸 처음이자 마지막 메달이었다. 또 5000m 12위, 1만m 4위에 랭크된 이승훈이 마지막 웃은 메달이었다. 밴쿠버올림픽에서 금 1개, 은 1개를 따낸 이승훈은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가 됐다.

이승훈은 공을 후배들에게 돌렸다. 이승훈은 “후배들이 열심히 잘해준 덕분에 마지막에 웃을 수 있었다”면서 “세 명이 함께 따낸 메달이라서 기쁨도 세 배”라고 말했다.

남자 팀 추월은 선수 3명이 400m 트랙 8바퀴를 함께 도는 종목이다. 반대편에서 출발한 상대국 꼴찌 선수를 따라잡으면 이긴다. 따라잡지 못하면 양국 맨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끊는 시간으로 승부를 가린다.

결승전 상대는 최강국 네덜란드였다.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이 이기기 힘든 강호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서로 하나가 돼 끝까지 버텼다. 8바퀴 중 이승훈이 4바퀴를 선두에서 이끌었고 다른 2명은 각각 2바퀴씩을 맡았다.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끄는 선수는 바람의 저항을 혼자 떠맡는다. 그럼 다른 선수 2명은 그 뒤에서 바람을 피해 전진한다. 앞선 선수가 질주하는 데 들어가는 힘을 100이라고 하면 뒤따르는 선수는 70이면 같은 속도를 낼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고리가 바로 엉덩이에 올려진 손이었다.

이승훈은 “뒤에 있는 후배가 손을 내 엉덩이에 살짝 얹어놓으면 힘이 덜 든다”고 말했다. 후배들은 “선배 뒤에서 덕을 보고 달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손으로 살짝 민다”고 답했다. 그렇게 되면 이승훈은 힘이 덜 들고 후배들은 이승훈 뒤에 바짝 붙어 바람을 더 많이 피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대등한 레이스를 펼친 비결이다.

이승훈은 “네덜란드 선수들과 스피드를 맞출 수 있는 든든한 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자신 있게 리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형준은 “(이)승훈이 형이 5000m 이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훈련마다 우리를 긍정적으로 이끌었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막내 김철민은 “지금까지는 승훈이 형에게 의존하는 면이 있었지만 평창올림픽에서는 내 실력을 늘려 팀에 더 보탬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밴쿠버올림픽 때에는 이상화·모태범·이승훈이 빙속 3총사였다. 그런데 소치올림픽에서는 이들이 새로운 빙속 3총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