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회마다 효자노릇을 해 온 남자쇼트트랙 국가대표팀이 소치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최약체 전력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그래도 ‘메달 한두 개는 따내겠지’라며 가진 실낱같은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첫 종목인 1500m 준결승부터 신다운(21·서울시청)·이한빈(26·성남시청)이 충돌했다. 지난 13일 명예회복을 노리고 나선 5000m 계주에서도 ‘맏형’ 이호석(28·고양시청)이 넘어져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1000m에서도 신다운, 이한빈이 실격으로 중도에서 미끄러졌고 이한빈, 박세영(단국대)이 배수진을 치고 나선 500m에서는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 때마다 선수들은 “죄송하다” “아쉽다”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레이스에서 고의로 서로 충돌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실수 또는 불운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여지도 있다. 그러나 시쳇말로 “실수도 자주 하면 실력”이며 “실력이 부족할 때 나오는 게 반칙”이다.

남자대표팀은 올림픽에 앞선 국제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넘어졌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불운이 아니라 훈련 부족이다. 남자 대표팀은 ‘오늘 못한 거, 내일 하자’는 식으로 훈련 강도를 스스로 낮췄다. 매일매일 기둥을 갈아먹듯 훈련량 부족이 쌓였고 그게 노메달의 수모를 초래했다. 소치올림픽 직전에 한 프랑스 고지훈련은 극약처방이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이미 망가진 뒤에는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노메달에 그친 것은 훈련 부족의 결과물이다.

쇼트트랙은 우연성과 뜻밖의 변수로 메달이 결정되기 일쑤다. 이번에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딴 박승희는 영국 잘못으로 금메달을 놓쳤고 그 종목에서 우승한 중국 선수는 꼴찌로 출발하고도 금메달을 주웠다. 그 때마다 “쇼트트랙 메달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말이 나왔다. 그건 뒤집어 생각하면 운 또는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런 쇼트트랙의 태생적인 특징이 그동안 세계 최강을 자부해온 남자 대표팀의 안일함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남자 대표팀 윤재명 코치와 선수들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올림픽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로 일말의 기대감을 피력했다. 윤 감독은 “남자 대표팀의 최소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무조건 금메달 2개”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정을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운과 변수에 기대는 것은 어리석었다.

윤 감독은 지난해 말 월드컵 1,2차대회를 마친 뒤 지휘봉을 내려놨고 그 자리를 여자 대표팀 최광복 코치가 떠맡았다. 소치올림픽 기간에도 남자 대표팀을 지휘한 것은 최 코치였고 남자 대표팀 코치로 돼 있는 윤 코치는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윤 코치는 “내가 외곽에서 지원 업무를 맡고 최 코치가 선수단 훈련을 맞는 식으로 업무가 이원화됐다”고 말했지만 윤 코치가 일선에서 물러난 데는 선수단과의 불화가 컸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남자 대표팀은 ‘소치 치욕’을 불운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결과를 실수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하고 패인을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서 찾을 때 미래를 향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운 좋게 이길 수는 있어도 불운하게 패할 수는 없다”는 말. 지금 남자대표팀은 가슴 깊이 새겨야할 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