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에 나가는 투수들은 경험의 유무가 곧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경험이 있는 투수들은 위기 상황에서 올라와도 침착하게 자기 공을 던지는 반면 경험이 없는 투수들은 위기 상황에서 심하게 흔들린다.

자칫 완패를 당할 수 있었던 위기에서 한국을 멋지게 구해낸 것은 삼성의 필승 셋업맨 안지만(31)이었다.

한국이 대만에 2-3으로 끌려가던 7회말 한현희를 대신해 3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양현종이 2루타와 안타를 맞고 무사 1·3루에 몰리자 류중일 대표팀 감독은 지체없이 양현종을 내리고 안지만을 마운드에 올렸다.

외야 뜬공은 물론 느린 땅볼 하나만 나와도 2점차로 벌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무사 1·3루의 실점 확률은 무려 86.2%나 됐다. 그리고 안지만은 13.8%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다.

첫 타자 주리런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택한 안지만은 볼카운트 1-2의 유리한 상황에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 한숨을 돌렸다. 두 번째 타자 린쿤셩을 상대로는 볼카운트 2-2에서 얕은 중견수 플라이를 만들어내며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사 1·3루에서 순식간에 2사 1·3루로 상황을 바꿔놓은 안지만은 9번 판즈팡을 상대로 초구에 볼을 던졌다. 두 번째 직구는 파울이 돼 볼카운트가 1-1이 됐고, 결국 판즈팡이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며 대만은 더 달아날 수 있었던 절호의 찬스를 날렸다.

안지만의 역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한국은 8회초 1사 만루 찬스를 잡은 뒤 강정호의 몸맞는공과 나성범의 2루 땅볼, 황재균의 2타점 적시타가 연달아 터지며 순식간에 6-3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류 감독은 자칫 대만이 다시 분위기를 잡을 수 있을까 염려돼 8회초에도 안지만을 그대로 올렸다. 그리고 안지만은 기대에 부응했다. 대만의 1~3번 타자를 삼진 2개와 1루 땅볼 1개로 처리, 임무를 100% 완수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투수 한 명의 역투가 경기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지만이 잘 증명했다.

안지만은 “우리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며 “다만 올라가서 막아야된다는 생각은 했다. 팀에서도 맡고 있는 부분이 중간에서 점수를 안주는 것이다. 대표팀에서도 그게 내 역할이었다. 중간투수였기에 점수를 안줘야겠다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