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1년(1787년) 1월 동래성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여…영감! 크, 큰일 났습니다!”

“아 또, 왜? 뭔 일인데 그래?”

“고갑산(高甲山)이란 놈이 여자애를 꼬드겨서 왜놈들이랑….”

“왜놈들이랑 뭐? 이 자식은 말을 하다가 끊고 그래?”

“…다 아시잖습니까?”

“통하였다느냐?”

“…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국제적 포주, 고갑산의 등장이었다. 당시 동래부사(東萊府使) 민태혁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즉시 고갑산을 취조하게 된다.

“에, 그러니까 네가 서일월(徐一月)이 옆집에 살았는데, 이 촌년을 꼬셔서 왜놈들이랑 붙어먹게 했다?”

“붙어먹는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국제적인 유전자 교류라고….”

“네가 황우석이냐? 유전자를 교류시키게? 안되겠어. 일단 패라. 패면 좀 나오겠지.”

“여…영감 나으리!”

“왜?”

“물어보시지도 않고, 일단 패라니요. 뭘 물어보셔야…”

“그래? 별로 묻고 싶은 게 없는데…”

조사결과…아니 매타작 결과 고갑산은 사실을 그 동안의 범월잠간(犯越潛奸) 행각들이 드러나게 됐다.

“그러니까, 서일월이랑 쪽발이 다섯 명이 붙어먹었다 그거지?”

“네.”

“그것밖에 없어?”

“…일월이 말고도 한 4명 됩니다.”

“그러니까, 네가 애들을 모아서 조직적으로 왜관에 침투시켰다 그거지?”

“애들이 간첩입니까? 침투를 시키게….”

“어쨌든 몰래 보냈잖아! 그게 침투지 침투 아냐? 그리고 네들은 간첩보다 더 한 놈들이야! 어떻게 조선의 여자를 왜놈들이랑 붙어먹게 만들어?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말야. 너 같은 놈은 이 사회의 악이야 악! 당장 사형시켜야 해!”

동래부사는 고갑산에 대한 취조결과를 적어 장계를 올리게 된다.

“이런 때려죽일 놈을 봤나! 어찌 조선의 여인을 왜놈들에게 팔아먹을 수 있어? 이런 천인공노할 놈!”

“망극하옵니다.”

“그래 동래부사는 뭐라더냐?”

“에, 그러니까…포주 고갑산은 참형으로 다스리고, 나머지 몸 판 여자들도 법대로 처분했으면 한다고….”

“당장 처형시키라 그래!”

정조는 고갑산의 처형을 윤허함은 물론, 몸 판 여자들 역시 법대로 처분하라고 명하게 된다. 이때 당시의 분위기는 상당히 살벌했는데, 국제포주 고갑산은 그길로 효수(梟首 : 목을 자른 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매달아 놓는 형벌) 당했고, 고갑산의 꼬임에 넘어가 몸을 판 다섯 명의 여인들은 죽지 않을 만큼 맞은 다음 섬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자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자국민에 대한 처분은 바로 시행했지만, 외국인들이 문제였다. 관례에 따르면, 조선 여자와 통간한 왜인들은 사형이었다.

“아, 민상 이런일이노 생겨서 유감이므니다.”

“그러니까, 네들 어쩔거야? 당장 애들 안 내보낼 거야?”

“아…그러니까 현행범으로 잡힌놈이노 형을 받다 죽지 않았스므니까? 이 정도 선에서….”

“야! 서일월이랑 놀아난 애만 다섯 명이야! 그리고 나머지 여자 네 명이랑 놀아난 애들 어쩔건데?”

“걔들을 다 죽이실 겁니까?”

“좋게 좋게 말로 할 때 다 내보내. 그 놈들은 추방이니까 후딱 내보내. 알았어?”

“그것이…지금 배가 없어서 그러므니다. 조만간 큰 배가 오면 그때….”

“이게 지금 누구 성질테스트 하나. 확 엎어버리기 전에 다 내보내. 알았어?”

동래부사 민태혁이 강하게 어필하였으나, 왜관 측의 반응은 시큰둥이었다. 결국 정조는 폭발하게 된다.

“이러니까 쪽발이 놈들한테 얕보이는 거야. 그게 큰소리만 친다고 될 일이야? 뻥카 지른다고, 애들이 쫄아? 엉?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왜놈들이 우리 애들을 건드리겠어? 당장 민태혁이 저놈 파직시키고, 그래 도총관(都摠管:정2품으로 5위도총부를 총괄하던 군직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합참의장 정도?) 이계를 그 자리에 내려 보내! 왜놈들 이거 안 되겠어. 가서 확 군기를 잡으라고 그래!”

정조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정3품 당상관을 그 자리에서 해임시켜 버리고, 조선시대 최고 군 요직인 도총관 자리에 있던 인물을 후임으로 보내버릴 정도였으니 그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래부사 민태혁에게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이것이 바로 조선인의 자존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로 범월잠간을 주선한 고갑산은 여자를 판 것이 아니라 조선의 자존심을 판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