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마라톤이 열린 4일 대구 국채보상공원 앞. 출발선과 15㎞ 지점, 30㎞ 지점, 결승선을 겸하는 이곳에 경기시작 한 시간 반이 지나자 한 남자가 맨 앞에 나타났다.

2009 베를린 세계육상대회 우승자 아벨 키루이(29·케냐)였다. 2시간5분04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갖고 있어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혀온 키루이는 일방적인 레이스를 펼친 끝에 2시간7분38초에 골인, 2위 빈센트 키프루토(2시간10분06초·케냐)를 2분32초나 멀리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2년 전 베를린에서 2시간6분54초의 대회신기록으로 우승한 키루이는 2연패에 성공한 뒤 이번 대회 우승자가 나올 때 울리는 대회 주제가 ‘렛츠 고 투게더(Let’s go Together)’에 맞춰 아프리카 전통춤을 추며 기쁨을 만끽했다.

세계기록(2시간3분59초) 보유자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8·에티오피아)와 시즌 랭킹 1위(2시간4분40초) 엠마누엘 무타이(29·케냐)가 빠진 상황에서 키루이에 대적할만한 적수는 없었다. 키루이는 국채보상공원~청구 네거리~수성 네거리~수성못~대구은행 네거리~반월당 네거리를 두 바퀴 돈 후 구간을 단축해 한 바퀴를 도는 레이스에서 30㎞ 지점부터 치고나가 일찌감치 우승을 결정지었다.

키루이는 고교 졸업 이후 전문 마라토너로 나선 늦깎이 선수다.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했던 키루이는 케냐의 경찰 채용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뒤부터 정식으로 달리기 훈련을 받았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2006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다른 선수의 페이스 메이커로 나섰다가 9위로 골인해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2008년 빈 마라톤 우승(2시간7분38초)에 이어 2009 베를린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발돋움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기온이 섭씨 24.5℃, 습도 67%로 선선해 스피드가 좋은 아프리카 선수들의 강세가 돋보였다. 동메달은 2시간10분32초의 페이사 릴레사(에티오피아)가 차지했다.

단체전도 1, 2, 5위를 휩쓴 케냐가 6시간29분23초로 1위를 차지했다. 호리바타 히로유키·나카토모 켄타로·가와우치 유키가 2시간 10분대의 고른 기록을 보인 일본이 6시간41분13초로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개인전 또는 단체전에서 메달권을 목표로 삼았던 한국 대표팀은 정진혁(21·건국대)이 2시간17분04초로 23위, 이명승(32·삼성전자)이 2시간18분05초로 28위를 차지했고, 황준현(35위) 황준석(40위) 김민(44위) 등은 하위권으로 처졌다. 한국은 단체전에서 6시간57분03초로 6위에 올랐다.

대표팀 정만화 코치는 “날씨가 더울 것으로 예상해 힘의 마라톤을 준비하려 웨이트트레이닝을 많이 했는데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영조 육상연맹 마라톤 기술 위원장도 “부끄러운 성적을 내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