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가 너무 오래 가다 보면 초창기의 신선함과 재미를 잃게 되곤 한다. 8년 가까이 전세계 영화팬들을 매료시키킨 ‘해리 포터’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뒷심을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베일을 벗은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가 전편의 명성을 잇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선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를 들은 전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보다도 볼거리가 부족하고 지루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는 해리 포터와 덤블도어 교수가 ‘악의 지존’ 볼드모트의 영혼을 나누어 놓은 7개의 호크룩스를 파괴하기 위해 떠나는 기억여행을 그린다. 여기에 해리 포터와 그를 오랫동안 흠모해왔던 론의 여동생 지니, 헤리미온느와 론의 귀여운 사랑이 더해진다. 스토리 라인만 들으면 매우 박진감과 유머가 넘치는 작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완성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가장 큰 패착은 데이비드 예이츠의 심심한 연출이다. 전편 ‘불사조 기사단’에 이어 연출을 맡은 예이츠 감독은 2시간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원작의 방대한 스토리만 옮기기에 바쁘다. 작품을 아우르는 자신의 비전이 없기에 이야기의 힘도 떨어진다. 제목에 나온 ‘혼혈왕자’의 정체를 쫓는 미스터리 구조가 살아나지 않아 극의 높낮이가 별로 없다. 그래서 결말부 주요 등장 인물의 죽음까지도 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에 눈뜬 어린 배우들의 귀엽고 상큼한 연기가 유일한 위안거리다.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스펙터클도 부족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라고 하면 기대하게 되는 마법 세계의 진기한 볼거리가 매우 부족하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요 관객인 아이들이 즐기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둡고 밋밋하다. 사춘기에 들어선 주인공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에 초점을 맞춘 원작의 탓일 수 있다.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던 예이츠 감독의 전력에 맞게 영화가 아닌 TV 미니시리즈를 보는 느낌이 든다. 제작진이 왜 중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1·2편의 크리스 콜럼버스, 3편의 알폰소 쿠아론, 4편의 마이크 뉴웰 감독이 무척 그립다.

　전편과 매우 다른 분위기와 구조를 지닌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가 고정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