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만 남는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이 스프링캠프를 코앞에 두고 자진 사퇴했다. 새로운 진용을 갖춰 젊은 사자로 거듭나라는 의미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삼성이 30일 언론에 발표한 대로라면 그렇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 발표를 그대로 믿자니 의문투성이고, 그렇다고 당사자인 선동열 감독도 속시원히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

#자진사퇴 아닌 해고

삼성은 선 감독의 ‘용퇴’ 사실을 발표하는 동시에 류중일 코치를 후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야구계가 충격받을 정도로 갑작스런 퇴진인데 구단은 당황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후임 감독까지 발표했다. 이미 결정해놓고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선수단 세대교체에 ‘올인’ 했던 선 감독이 삼성의 새로운 변화와 쇄신을 위해서 물러났다는 구단 발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선 감독은 구단 발표 이후 한동안 연락 두절 상태였다. 자진 사퇴했다면 이미 그 전에 마음을 정리했을테니 그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갖은 추측만 난무하던 오후에야 연락이 닿은 선 감독은 “아침에 구단주와 사장을 만나 그런 얘기가 나왔고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오전에 갑자기 서울 구단사무실로 호출받고 김인 사장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관계자의 말을 뒷받침한다.

#한국시리즈 준우승 때문?

그렇다면 삼성은 왜 계약기간을 4년이나 남겨놓은 선 감독을 경질했을까. 한국시리즈에서 힘없이 무너진 데 대한 구단의 불만이라는 시각이다. 삼성은 지난 한국시리즈에서 SK에 4연패를 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선 감독은 젊은 선수들로 대폭 물갈이 된 선수단을 이끌고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SK에 4차전까지 모두 맥없이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시리즈를 마친 뒤에는 “우리는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며 담담하게 패배를 받아들였다. 지고도 태연했던 선 감독에 대한 구단의 불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 감독은 2005년 사령탑을 맡은 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지난 해를 제외하면 4강에 들지 못한 적도 없다. 단 한 번의 한국시리즈를 놓고, 계약기간 4년이나 남은 감독을 경질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호남 출신 감독에 대한 반대 정서

선 감독은 해태 프랜차이즈 스타로 호남 출신이다. 오랜 기간 해태를 지휘했던 김응용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긴 삼성은 그 ‘후계자’ 선 감독에게 5년 동안 팀을 맡겼고, 또 5년을 더 보장해줘 장기집권 체제를 열어줬다. 더구나 삼성의 팀 색깔이 공격 야구에서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로 변화하면서 대구·경북 출신 감독을 원하는 지역 정서와 부딪혔다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신임 류중일 감독은 대구 경북고 출신으로 삼성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룹 내부 권력 이동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가능성이다.

삼성은 이달 초 구단 수뇌부를 교체했다. 그룹 전체 인사가 실시되는 와중에 김응용 사장을 퇴진시키고 김인 삼성 SDS 사장을 새로 선임했다. 프로야구계 최장수 단장이던 김재하 단장도 송삼봉 부단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났다. 야구계에서는 그 다음 선 감독 차례가 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김응용 사장은 물론 선동열 감독도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 그룹 내 실세가 바뀌었고, 이에 따라 야구단 수뇌부도 모두 물갈이 됐다는 것이다. 성적으로는 트집 잡힐 것 없는 선 감독이 갑자기 경질될 이유가 달리 없다는 시각이다.

야구계 한 관계자는 “김응룡 사장과 김재하 단장이 떠나고 마지막 남은 ‘라인’이 선 감독이었다. 납득은 가지 않지만 상식적인 이유는 그것뿐이지 않겠나”라고 추측했다.

#뭐가 그리 급했나

감독 교체는 구단의 권한이다. 이유는 궁금하지만 결정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독 경질과 후임 감독 발표를 일사천리로 진행해버린 과정이 납득하기 힘들다.

선 감독은 그동안 어느 감독보다 구단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아왔다. 보기 드문 5년 장기계약을 두 차례나 해준 것이 대표적인 예다. 더구나 선 감독은 ‘국보’로 불리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스타 야구인이다. 선수 시절은 물론이고 감독으로서도 두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궈 좋은 경력을 쌓아왔다.

그러나 삼성은 예고 없이 선 감독에게 ‘해고’ 통보 한 뒤, 곧바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퇴진을 발표하는 동시에 후임 감독도 선임했다.

당사자와 충분히 상의를 거친 뒤 격식 갖춰 해도 될 발표를 이처럼 바쁘게 진행한 이유도 의문을 낳는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계약기간이 얼마 남았는 지 문제가 아니라, ‘국보’ 선동열인데 이런 식으로 퇴진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무슨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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