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이 외형상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는 일단락됐고, 프로연맹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국가대표팀은 승부조작에 대한 사죄라도 하듯 세르비아와 가나를 연파했다. 대표팀의 선전이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린 듯 하다. 주말에는 다시 K리그가 재개됐다. 연맹은 최용수 FC서울 감독과 황선홍 포항 감독의 기자회견이라는 이벤트를 이례적으로 축구회관에서 마련하기도 했다.

어쨌든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 축구도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런데 웬지 공허하다. 볼 일보고 밑 안닦은 것 같은 찜찜함이 좀체 가시지 않는다.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라고도 한다. 모두 승부세계의 예측불허성을 일컫는 말이다. 승부조작은 축구의 이런 불확실성에 대한 일반의 믿음을 배반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줄 알았던 그라운드에 짜여진 각본이 있었다. 돈을 노리고 선수들의 양심을 유린한 검은 손이 있었다.

두 명의 선수가 유명을 달리하고 축구의 본질이 의심받고, 존립근거가 흔들리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정작 축구계가 한 일은 별로 없다. 선수가 몇명 구속되긴 했지만 그건 검찰이 한 일이다.

축구계에서 한 것이라곤 눈물흘리고 반성하고, 다짐한 게 전부다.

검찰수사 이후 축구계에선 온갖 의혹이 떠다녔다.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며 실명이 거론된 선수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선수들 사이에 불법베팅이 만연돼 있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연맹은 이들 의혹을 알면서도 진실규명에 나서지 않았다. 대표선수 음주의혹이 불거졌을 때 처럼 공식조사도 없었고, 수사의뢰도 없었다. 자진신고를 받았지만 “나는 결백하다” “우리팀엔 승부조작 연루선수가 없다. 언론에서 고발하라”는 방어막이 처진 상황에서 애시당초 기대하기 힘들었다.

의혹은 밝혀지지 않고 여전히 의혹으로 남았다. 의혹과 함께 냉소도 남았다.

축구계는 좀 더 솔직할 필요가 있다. 팬들의 신뢰를 되찾는 데 이것만으론 택도 없다는 걸 축구인들 스스로 잘 안다. 그런데도 쇼만 있고, 시늉만 있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승부조작은 검찰에 잡힌 것이 전부다. 이제 K리그를 재개하니 다시 사랑해달라’고 하면 팬들이 인정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축구인은 “겉으로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금 연맹은 일각만 잘라내고, 숨어있는 빙산은 그대로 안고 가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두 번의 큰 승부조작 사태를 겪었다. 1980년에는 ‘토토네로’ 스캔들이, 2006년에는 ‘칼치오폴리’ 스캔들이 터져 이탈리아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이탈리아 축구계는 강경했다. AC밀란과 유벤투스 등 연루된 구단들은 명문에 관계없이 세리에B로 강등시켰고 연루 선수들은 중징계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최근에 전·현직 선수 16명이 체포되는 승부조작 스캔들이 또 터졌다.

이쪽을 잡으면 저쪽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잡기게임처럼 질기고 질긴 게 승부조작의 유혹이다. 독이 침투한 뼈는 깎아내야 한다. 아프다고 뼈는 그냥 놔두고 상처에 연고만 발라선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

연맹이 ‘빙산’과의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면 ‘걸린 사람만 운이 없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다를바 없다. 발본색원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말이다.

축구는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환부를 도려내지 않는 눈물과 참회만으로는 축구에 대한 팬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극적인 명승부가 나와도 ‘저거 혹시 승부조작 아니야’라는 의구심이 마음 한구석에 든다면 정말 슬프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