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면만으로는 꼭 우승팀의 뒷풀이 모습이었다.

지난 29일 밤 대만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 한국 팀으로 사상 첫 아시아시리즈 정상에 선 삼성 선수단이 마운드를 중심으로 환호하고 있는 가운데 1루 덕아웃쪽 소프트뱅크 선수들 사이에서도 요란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우치카와 세이치와 카와사키 무네노리 등 주력선수 7명은 일본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아시아시리즈 같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대회에서 결승 패전팀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것도 낯설었지만 환하게 웃으며 손에 ‘V자’까지 그리는 장면은 더욱 생소했다.

그들은 아시아시리즈 패전에 얼마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일까.

한국 선수들은 지난 26일 예선리그 소프트뱅크전에서 0-9로 대패한 뒤 웃지 못했다. 다음날 대만전을 위해 나타난 김상수는 “수치스러울 정도”라고 했고, 박한이는 “일본 투수에 삼진 세개를 먹었는데 잠이 잘 오지 않더라”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류중일 감독은 “실망한 국민 마음을 잘 안다”고 했다.

소프트뱅크 선수들도 결승전 패전이 달가울 리 없었다. 더구나 아시아시리즈 5회째만에 일본팀으로는 첫 정상 등극 실패였다.

그러나 체감온도가 다르다. 가와사키는 “분하다. 그렇지만 즐거웠다”고 했다.

현장에서 함께 한 한 일본 언론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일본 야구팬과 야구계에서 어떤 반응이 있을지 감이 아직 없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선수들도 차차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일본팀의 패전이 아시아시리즈 전체 분위기를 바꿔놓을 것으로 본다”도 했다. “일본은 이제 한국을 이겨야할 이유가 생겼다. 이제는 이기려들 것이다”고 내다봤다.

일면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 대표팀은 2006년 WBC에서 ‘베스트 대 베스트’로 맞붙은 일본 대표팀과 승부에서 승리를 거둬가며 한일 야구전쟁 구도를 형성했다. “앞으로 30년은 한국이 일본을 꺾을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이기겠다”는 일본대표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유명한 발언도 이 대회를 시작하며 나온 것이었다.

일본 언론 관계자의 지적대로 일본 매스컴이 30일 쏟아낸 반응은 차갑다. 일본 스포츠신문 ‘스포츠호치’가 인터넷판에서 와다 쓰요시, 스기우치 도시야, 홀튼 등 주력선발진을 대동하지 못한 것을 언급하는 등 일본 언론들은 한국전 패전 이유를 꼬집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