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영화 <미스터 K>를 촬영 중이던 이명세 감독은 제작사 JK필름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촬영중단 통고를 받았다. 지난달 12일 방콕에서 크랭크인한 <미스터 K>는 태국 촬영을 마치고 국내 촬영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미스터 K>의 제작사인 JK필름과 메인 투자사인 CJ E&M은 태국과 한국에서 촬영한 9회차 분량의 현장 편집 본을 들여다본 결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안동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긴 지방촬영을 앞두고 촬영 중단을 결정했다. 이명세 감독 입장에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통고였다.

JK필름 측은 “당초 합의한 시나리오와 찍어온 영화는 ‘톤 앤 매너’가 아예 달랐다”고 말한다. 결국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드라마나 캐릭터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JK필름의 생각에 “CJ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 주연의 <미스터 K>는 제작비 100억대 첩보물로 ‘한국판 007’로 불리우며 제작단계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어 모았던 작품이다.

또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연출한 한국 대표 비주얼리스트 이명세와 <해운대>를 흥행시킨 대표 제작사 JK필름의 의외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다. 총 95회차로 예상된 <미스터 K>의 촬영 중지는 9회차 분량의 편집 본을 본 이후에 이루어졌다. 10% 정도 촬영된 영화에 이런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JK필름 길영민 대표는 “결정이 성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촬영 전에 이감독과 충분히 영화의 큰 그림에 대한 합의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건 창의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약속과 신뢰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모든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이 현장이다. 그 상황에 따라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이 연출이고 감독의 존재 이유다. 애초 콘티대로 안 찍어서 문제라는 건 몰상식한 이야기”라고 했다.

길대표는 또한 “민규동 감독과 함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찍으면서 좋은 결과를 냈다. 예술성 있는 감독과의 작업에서 시너지가 생겼던 케이스 때문에 이명세 감독에게도 그런 기대를 했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이명세 감독을 모셔온 이유가 뭐겠나. 그 분을 우리 입맛대로 길들이겠다는 목적이 아니었다. 창의성과 상업성이 만나 뭔가 시너지를 내보자는 생각이었다. 정해진 콘티와 규격화 된 내용을 요구했던 건 아니었다”며 현재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충무로의 영화인들은 이명세 감독과 JK필름에 대해 “애초에 안 어울리는 무리한 조합”이었다고 말했다. 한 제작자는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을 몰랐나?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안타깝다”며 “제작사나 투자사의 오만함 아닌가. 대기업 중심으로 상품 만들 듯 제작되는 현재 한국 영화계를 진단하는데 있어서는 이슈가 만들어진 것 같다”며 입을 모았다. 김영진 평론가는 “결과적으로 제작사와 감독 사이의 일종의 쌍방과실이다. 하지만 겨우 10% 정도 촬영분을 보고 영화의 전체를 판단 할 능력과 전문성이 현재 제작사나 투자사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기업 시스템으로 작업한 <7광구>나 <마이웨이>등이 과연 흥행적으로나 완성도 면에서 성공했나”하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JK필름 길 대표는 “(이 감독과) 생각에 많은 간격이 있고 명쾌하게 좁혀진 부분은 없는 상태다. 이미 소요된 경비가 30억 가량 된다. 일단 원만한 합의가 목표지만 만약 이 감독과 의견조율에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감독을 교체해서라도 진행 시킬 수 밖에 없는 프로젝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