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위장약을 먹었다.”

한국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지난 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전을 앞두고 긴장했던 소회를 뒤늦게 털어놨다.

하라 감독은 지난 5일 일본의 한 라디오 신년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 해 WBC에서 첫 한국전을 앞두고 위장약을 먹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며 “이런 것이 일본 대표팀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독일 여자월드컵에 출전하는 일본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함께 출연한 자리였다. 대표선수로서 부담감이 얼마나 큰 지를 설명하며 지난 해 WBC 때 경험을 소개했는데, 가장 긴장했던 상대가 한국이었다는 이야기를 실토했다.

종목을 막론하고 언제나 치열한 한국과 일본의 신경전은 특히 야구에서 더 심하다. 일본이 야구에서만큼은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는 동안 일본은 메달도 따지 못했다. 그 뒤 WBC 사령탑을 맡은 하라 감독의 부담은 당연히 배로 늘었다.

특히 제2회 WBC에서는 ‘크로스 토너먼트’라는 독특한 대회 방식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무려 5차례나 맞붙었다.

최근 들어 일본 야구가 한국의 기세에 눌린 데다 유난히 한국전이 많았으니 부담스러웠던 상황. 1라운드 예선 1차전에서 중국을 4-0으로 이긴 일본의 2차전 상대는 한국이었다.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하라 감독은 경기 전 위에 통증까지 겪으며 난생 처음 위장약까지 먹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하라 감독의 ‘위장약 이야기’ 요지는 다른 데 있다. ‘일본 대표팀이라는 자리가 주는 부담감이 그 정도로 심하니 잘 이겨내고 좋은 성적을 거두라’고 여자 축구대표팀을 격려한 의미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치열했던 양 팀 자존심 대결에서 일본 대표팀이 느꼈던 압박이 얼마나 심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시 2라운드 1·2위 결정전까지 네 번 맞붙어 2승2패를 기록했던 한국과 일본은 마지막 결승전에서 연장 10회까지 접전을 벌였고, 일본이 스즈키 이치로의 결승타로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