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날 극장가에는 가족 관객을 노린 한국영화가 풍성하다. 작품 규모에서 밀리는 외화중에선 취향 있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탈만한 수작들이 많다. 지난해 <아바타>와 같이 시장을 주도하는 대작은 없지만, 오히려 다양성 면에서는 앞선다.  

◇한국영화 4파전=“같은 시기 한국영화의 과다 경쟁이 안타깝다”는 강우석 감독의 제안으로 개봉일을 1주 앞당긴 <글러브>는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로운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충주성심학교 청각장애인 야구단의 이야기를 극화한 이 영화는 강 감독 특유의 이야기 구성, 감정 조절 능력이 돋보인다. 눈물과 웃음이 적절하게 조화된 상업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김탁환 작가의 <열녀문의 비밀>을 영화화했다. 하지만 원작과는 이야기의 큰 줄거리만 같을 뿐, 세부적인 인물 설정은 크게 바뀌었다. 영화에서 주로 진지한 모습을 보여왔던 김명민이 허술한 탐정 역을 맡아 웃음을 선사하고, <방자전>에서도 명품 감초 연기를 보여준 오달수가 그와 호흡을 맞춘다. 

<평양성>은 2003년 선보여 흥행한 <황산벌>의 속편이다. <평양성>은 고구려와 나·당 연합군의 대결을 그린다. 전편에도 등장한 김유신(정재영)은 그 사이 거동조차 불편한 할아버지 대장군이 됐고, 백제 패잔병 거시기(이문식)는 이번엔 신라군에 끌려가 평양성 바로 앞에 배치된다. ‘무조건 공격’을 외치는 고구려의 모습에서 현재 북한이 떠오르는 등, 현실 풍자적인 요소도 강한 코미디 영화다. 

지난 연말 개봉한 <헬로우 고스트>는 예상을 뛰어넘은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황해>, <라스트 갓파더> 등 쟁쟁한 경쟁작과 맞붙은 <헬로우 고스트>는 줄곧 박스오피스 2~3위권을 유지하면서 올해 첫 300만 관객 돌파 영화로 기록됐다. 가족의 정을 강조하는 작품 전체의 따뜻한 메시지가 가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헬로우 고스트>는 설 연휴에도 스크린수를 유지하면서 400만 관객까지 노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양한 외화=가족 관객을 노린 외화로는 <걸리버 여행기>와 <그린 호넷 3D>가 있다. 코미디 배우 잭 블랙이 주연을 맡은 <걸리버 여행기>는 신문사의 소심한 직원 걸리버가 우연히 버뮤다 삼각지대를 취재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폭풍을 만난 걸리버는 소인국에서 깨어난다. 뚱뚱한 잭 블랙이 특유의 루저 연기를 선보인다. 

<그린 호넷 3D>는 1930년대 라디오 시리즈에서 출발한 슈퍼히어로 영화다. 방탕하게 살던 재벌 2세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각성한 뒤 정의를 세우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수면의 과학> 등 아기자기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온 미셸 공드리 감독이 블록버스터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남다른 감식안을 가진 영화팬을 위한 작품도 많다. <환상의 그대>는 미국 코미디 명장 우디 앨런의 최신작이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거의 매년 작품을 내놓고 있는 앨런은 이번 영화에서 삶 속에서 마주치는 아이러니, 불운 등을 재치있게 다룬다. 그의 영화에는 유명 배우들이 앞다퉈 출연하기 위해 대기중인데, <환상의 그대>에는 안소니 홉킨스, 나오미 와츠,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나온다. 

<피나 바우쉬의 댄싱 드림즈>는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가 춤을 춘 경험이 없는 청소년들을 뽑아 자신의 대표작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말이 아닌 몸짓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혀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피나 바우쉬는 이 영화의 가편집본을 본 뒤 세상을 떴다.
피나 바우쉬의 마지막 모습이 다큐멘터리에 담겨있다. 

<아이 엠 러브>는 이탈리아 영화의 화려한 유산을 이어받은 작품이다. 이탈리아 재벌가에 시집와 남부러울 것 없이 화려한 삶을 살던 러시아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떠가는 과정이다.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이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척 하며 이탈리아어로 연기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윈터스 본>은 미국 극빈층 소녀의 삶을 스릴러 장르의 틀 속에 담은 영화다. 주연을 맡은 10대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이 영화를 통해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영화는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