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향하는 것 같지만 이 고백의 도착지는 이강철 넥센 수석코치와 김용달 KIA 타격코치다. 길었던 외로움의 끝에서 드디어 인연을 만났다.

김병현(34·넥센)과 최희섭(34·KIA)은 2013년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개막을 맞았다. 그 변신의 가운데에는 이야기가 통하는 그들의 ‘코치님’이 서 있다.

김병현은 지난 31일 광주 KIA전에서 시즌 첫 등판해 첫승을 따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김병현은 “(이코치를)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KIA 투수들을 지도하다 올해 넥센 수석코치를 맡은 이 코치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사이드암 투수다. 투수코치 가운데 사이드암 출신이 거의 없기에 ‘핵잠수함’ 김병현에게는 더욱 맞춤형 코치가 됐다.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 김병현이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미세하게 투구 폼도 조정하는 등 이 코치와 깊은 대화를 통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김병현은 “왜 자꾸 힘으로 상대하게 되는지에 대해 미국에서도 많이 고민했는데 그런 세심한 부분까지 지적해주는 분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겨울 이 코치님이 던지는 것을 직접 보여준 순간 뭔지 알 수 있었다. 힘이 아닌 리듬으로 강약을 조절하며 던지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연습벌레’로 유명한 김병현이 캠프 기간 숙소에서도 혼자 끊임없이 던져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자제시키며 훈련과 휴식의 경계를 지어준 것도 이 코치였다.

김병현은 “숙소에서도 혼자 던지고 있으면 코치님이 그만 하라고, 지금은 휴식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 코치님을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이 코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현했다.

‘빅초이’ 최희섭도 달라졌다. 30홈런·100타점을 쳤던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아무 문제 없이 스프링캠프를 소화했고 시범경기에 이어 개막전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처음 만난 김용달 코치가 있다.

워낙 힘이 좋은 최희섭은 그동안 하체를 이용한 타격에 대해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그동안 아예 몰랐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러나 마무리훈련부터 김 코치의 조언을 통해 타격 폼을 하체 중심으로 바꾼 최희섭은 “그동안은 무조건 홈런을 많이 쳐야 한다는 결론이었지만, 이제 내 야구를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다.

2007년 KIA에 입단한 최희섭은 한국 무대에 적응하는 데 경기 외적인 요소들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화가 필요한 선수였다. 그동안 많은 코치들이 대화로 노력했지만 최희섭의 ‘필’은 김 코치를 만난 뒤 통하고 있다.

최희섭은 “김용달 코치님과 캠프에서부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된다. 코치님에게 배우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좋지 않은 생각도 많이 했는데 이제 코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현과 최희섭은 공통점이 많다. 광주일고 1년 선·후배 사이로 한때 미국 야구에 한류 열풍을 일으켰던 투·타 메이저리거 출신이다.

보통 세계 최고의 메이저리그를 다녀온 선수들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함부로 ‘손 대기’가 어렵다.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도움을 주려는 용기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김병현과 최희섭은 남들이 ‘독특하다’고 할 만한 개성을 갖고 있다.

야구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만큼 외로움은 길고 깊었다. 오랜 미국 생활 끝에 돌아온 한국에서도 마음 둘 곳을 쉽게 찾지 못 했던 둘은 지금 드디어 인연을 만났다. ‘솔(soul)메이트’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