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일본 오키나와 한화 캠프를 한 손님이 찾아왔다. 30대 후반 이상의 프로야구 열혈팬이라면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만한 잠수함 투수 주동식이었다. 프로야구 출범 이듬해인 1983년 해태 우승의 주역인 주동식은 김응용 한화 감독(사진)과 마주하며 옛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은 “나는 캠프에서 골치가 아픈데 주동식은 즐거운가봐”라며 하소연했지만 옛 제자의 방문이 반갑지 않을 리 없었다.

김 감독에게 주동식은 추억이다. 김 감독은 1983년 해태 지휘봉을 잡은 뒤 전년도 4위에 그쳤던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 감독은 1982년 선수 14명으로 창단한 해태에 주동식과 포수 김무종 등 재일교포 선수를 가세해 본격적인 팀 빌딩 작업을 시작했다. 주동식이 전력에 힘을 보태고 오른손 선발 이상윤이 부상에서 회복하자 김 감독은 1982년 투타 겸업을 하며 10승을 올린 김성한을 타자로 전업시키며 팀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김 감독은 주동식 관련 일화 하나를 떠올렸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티켓을 따낸 뒤 후기리그 들어 주력투수들을 아끼려하자 승리 옵션을 걸어놨던 주동식이 반발하고 나온 일이다. 김 감독은 주동식의 등판 의지를 꾹 누른 뒤 한국시리즈에서 펼치도록 했다. 결국 주동식은 정규시즌 7승에 머물렀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2승을 거뒀다. 김 감독은 그해 4승1무로 후기리그 우승팀 MBC를 가볍게 꺾었고, 그때부터 이른바 해태 왕조를 세워갔다.

따지고 보면 30년 전에도 썩 밝지 않은 공간에서 찾아낸 빛이었다.

김 감독은 올해 막내구단 NC를 제외하고 최약체로 평가받는 한화 사령탑으로 또 한번의 승부수를 찾아 나섰다. 출발선상에서 발걸음은 무겁다. 롯데와 개막 2연전에서 초반 리드를 잡고도 이틀 연속 5-6으로 역전패했다. 어쩌면 30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할지 모른다.

승수쌓기 속도가 예전만 못할 수 있다. 김 감독이 2004년 삼성 사령탑을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뒤 올시즌 전까지 남긴 성적은 1476승 1138패 65무. 개막 이후 2패가 늘었다.

김 감독은 해태 사령탑을 하던 18년 동안에는 2147경기에서 1164승을 기록해 1.84경기당 1승을 거뒀다. 삼성 더그아웃으로 자리를 옮긴 2001년부터 4년간은 532경기에서 312승을 따내 1.71경기당 1승씩을 보탰다. 22년 동안 승률 5할6푼5리로 줄곧 고공 비행을 했지만, 올시즌은 과거와 같은 레이스를 기대하기에는 기본 전력부터 갖춰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다만 거북이 행보를 하더라도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인 발자국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전설의 사령탑’ 코니 맥 감독이 통산 3731승으로 세운 메이저리그 최다승 기록과는 거리가 있지만 발걸음 자체로도 우리 프로야구 역사는 풍성해진다.

프로야구 1000승을 돌파한 사령탑은 김성근 감독(1234승)과 김응용 감독 둘뿐이다. 김응용 감독은 주중 KIA전에서 8년 만에 복귀 첫승과 개인통산 1477번째 승리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