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의 승부는 선발 투수의 1구가 손을 떠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된다. 감독들은 최선의 공격 조합을 찾기 위한 타순 작성에 공을 들이고 또 들인다. 가을야구의 시작은 ‘타순 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타순의 최적 조합에 정석은 없다. 언제나 경기 결과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대개 1번에 출루율이 높은 선수, 2번에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선수를 배치한다. 3~5번에는 타점 생산 능력이 좋은 선수를 집어넣는다. 이어 6번에 맞히는 능력이 좋은 선수가 배치되면 중심타선에 더욱 힘이 생긴다.

2014 가을야구는 ‘타순 전쟁’이 더욱 치열하게 펼쳐지는 중이다. 상대 투수 스타일에 따라, 타격 컨디션에 따라 타순의 움직임이 잦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30일 3차전을 앞두고 “타순을 썼다 찢었다, 다시 썼다 하느라 아침 7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고 말했다.

NC 김경문 감독은 좀처럼 타순에서 움직임을 많이 가져가지 않는다. 경기 후반 벤치 멤버의 활용은 자주 이뤄지지만 선발 라인업의 변동은 크지 않다. 김경문 감독 특유의 ‘뚝심 야구’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LG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타순의 움직임이 많았다. 이호준은 1차전 6번으로 나왔다가 2차전부터 5번으로 조정됐다. 1번 박민우는 3차전까지 1번 자리를 지키다가 4차전에서 9번으로 움직였다.

LG 역시 타순이 경기마다 자주 움직였다. LG 타순의 ‘숙제’는 2번이었다. NC와의 준플레이오프 초반에는 오지환이 2번으로 기용됐지만 4차전에는 김용의가 2번 타선에 들어섰다. 넥센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2번은 김용의였다. 오지환은 7번으로 이동했다. 지난 28일 2차전에서는 상대 왼손 선발 앤디 밴헤켄에 대비해 2번에 황목치승이 들어가고 오지환은 9번으로 내려왔다.

LG 양상문 감독은 30일 잠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또다시 타순을 미묘하게 흔들었다. 오지환이 7번으로 복귀하고 손주인이 다시 9번으로 내려갔다. LG 선발 오재영에 대비해 2번 타순에는 황목치승이 들어섰다.

LG는 ‘2번 오지환’이 제 몫을 해줄 때 타선의 파괴력이 높아진다. 오지환이 장타력을 갖춘 만큼 정성훈과 1·2번에서 상대를 공략하면 단숨에 확실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양상문 감독은 오지환의 타격감이 조금 떨어진 상황에서 9번이 아니라 7번에 투입함으로써 3번부터 7번까지 모두 좌타 라인으로 구성했다. 넥센에 좌완 불펜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배치다.

‘타순 전쟁’은 좀처럼 타순을 바꾸지 않는 넥센에도 영향을 미쳤다. 2차전을 내준 넥센은 3차전에서 타순을 흔들었다. 타순 때문에 밤을 샜다는 염경엽 감독은 1·2차전에서 안타를 때리지 못한 이택근을 7번으로 내리며 상위 타선 부담감을 줄였다. 대신 2번 좌익수 자리에 외국인 타자 로티노를 투입했다. 1번 서건창에 이어 작전 수행 능력보다는 단숨에 장타를 통한 득점 기회 창출에 기대를 걸었다. 로티노-유한준-박병호-강정호-김민성으로 이어지는 ‘우타 빅배트’가 상대 마운드에 주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이용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타고투저’의 정규시즌에는 1점을 더 내기 위한 타순 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 꾸준히 자기 타선의 감각을 유지하도록 하는 적이 많았다. 하지만 가을야구는 다르다. 어떻게든 선제점을 내는 쪽이 유리하다. 지난 29일까지 치러진 가을야구 6경기에서 모두 선제점을 낸 팀이 이겼다. 1점이라도 더 내놓고 지켜나가는 게 승리 가능성을 높인다. 감독들의 보이지 않는 ‘타순 전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