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현수(20)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즐긴다.종족은 테란이든, 프로토스든, 저그든 가리지 않는다. “무조건 물량으로 승부합니다.” 그래서 저그 종족으로 게임할 때가 가장 승률이 좋단다. 저그 종족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세 종족가운데 유닛의 양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현수에게 야구도 그렇다. 기록 관리보다는 기록쌓기에 주력한다. 2008시즌 타격왕에 올랐지만 그의 초점은 홈런이나 타점 개수쌓기다. 당연히 내년시즌 목표도 타율보다는 홈런이나 타점 향상이다. 2008시즌 MVP 시상식장인 지난 6일롯데호텔.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김현수를 만났다. 한국시리즈 7차전 통한의 병살타로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고, MVP도 SK 김광현에게 내줬지만 김현수는 한 잔의 술에 다 털어버린 듯 밝은 얼굴로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당과 지옥

첫 질문을 좀 세게 했다. ‘올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는 말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베이징올림픽과 한국시리즈에서 너무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그는 “잠깐 안 맞았다고 지옥까지 가면 야구할 수 있겠어요”라며 도리어 물었다. 고통도 한 순간이라며…. “한국시리즈 끝나고 선배들과 술 한 잔 먹고 다 잊어버렸습니다.”

걱정한 것보다는 괜찮다는 생각에 “소감부터…”라며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을 알렸다.

“올해는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해요. 타석에서는 다 잘된 것 같습니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주루플레이에서 실수가 있었어요.”

“김현수도 방심하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한 김경문 감독의 말을 빌려 왜 한국시리즈서 부진했는지 물어봤다. “그냥 생각이 많았어요. 생각이 많아지다보니 자신감이 줄더라고요. 정규시즌처럼 그냥 하면 될텐데라는 후회가 밀려왔죠.”

좀 꿀꿀해 화제를 바꿔봤다. “잘 했던 기억 한번 더듬어달라”고 하자 얘기봇물이 터졌다.

“물론 베이징올림픽 때가 가장 기억에 남죠. 특히 일본과의 준결승전입니다. 감독님이 경기 중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서 있으라고 부르는 건 아닐테고 나가서 치라고 부르던 거겠지’ 하고 감독님을 뵜죠. 이와세와 맞섰을 때 그냥 자신있게 배트를 휘두르자는 생각뿐이었어요. 직구를 노리고 있었는데 슬라이더가 왔어요. 어차피 타이밍이 비슷했기에 안타를 칠 수 있었죠.”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선 베이징올림픽의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며 “한국시리즈 내내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냥 올림픽 때처럼 잘 휘두르자고 생각했으면 괜찮았을텐데…. 한국시리즈 7차전 병살타 때는 직구를 노렸는데 싱커가 왔어요.”

#2009년

또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아 내년으로 화제를 바꾸자고 했다. 신이 난 김현수는 거침없었다.

“타율이나 안타는 줄 거예요. 올해 같은 타율(3할5푼7리)은 나올 수가 없어요. 올해 타율이 평생 최고의 타율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타점(89타점)과 홈런(9홈런) 숫자는 늘 것 같아요. 이제 목표는 홈런왕·타점왕입니다. 10년간 3할 타자보다는 10년간 2할7푼이라도 홈런을 해마다 30개 이상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될 겁니다.”

이에 세부적으로 ‘홈런을 많이 치기 위해 기술적으로 보완할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일단 힘을 늘려야죠. 890~910g짜리 배트를 손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만큼…. 하체 단련도 필수고요. 그리고 스윙연습을 많이 해야돼요. 작년 캠프 때 한번에 1000개씩 했어요. 딱 2시간 걸리더군요. 그것을 하고 나면 불안감이 없어져요. ‘난 이정도 했는데 반드시 결과가 나올 거야’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이어 “공을 잘 노려야죠. 제대로 노려치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딱 이승엽(요미우리)의 타격 스타일이었다. 올해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노림수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승엽을 꿈꾸고 있었다.

자연스레 일본 얘기가 나왔다. “베이징올림픽 때 많은 일본 스카우트가 주목했다”고 하자 “일본 무대 정복은 어린 시절 꿈이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최고가 되면 외국으로 나갈 겁니다. 아직 여기서도 최고가 되려면 한참 남았죠. 음, 아마 해외로 못나갈 것 같네요.”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를 꼽으라고 하자 SK 김광현을 꼽으면서 “공이 좋은데다 언제 스트라이크가 들어올지 몰라 타자가 잘 속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화 류현진이 아직은 더 나은 투수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둘 다 공의 궤적이 좋고 위력도 있지만 류현진의 제구력이 더 낫다는 평가다.

#도약의 발판

김현수는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프로구단 지명을 받지 못하자 신고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고려대 입학 권유를 뒤로 한 결정.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뒷일은 제가 책임지면 되잖아요. 힘도 좋은데 안되면 막노동이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지금은 조금 더 배워야 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성장한 것 같아 정신력이 해이해진 것 같네요. 나도 모르게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던 것은 이번 기회에 생각 좀 하라고 하늘에서 만들어 준 시련 같아요. 정신력 보완 차원에서….”

스토브리그지만 내년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도 있고 해서 바쁘겠다고 하자 “국가대표로 뽑아주시면 저는 언제나 나갈 겁니다. 60세에 뽑아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번 베이징올림픽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는데 도움이 돼야죠.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는 것이니까요”라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올해 고마운 사람 이름 한번 읊어보라고 하자 ‘김경문 감독’이라고 입술을 뗐다. “계속 게임에 내보내준 감독님이 우선 고맙고, 또 옆에서 타율 떨어지지 않게 도와주신 김광림 타격코치도 감사하고요. 매일 야구장에 편히 올 수 있도록 고생하시는 부모님도 고맙습니다. 아, 어서 빨리 운전면허 따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