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오달수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가끔 찡그리는 모습엔 ‘구타유발자’의 폭력남 오근이 오버랩됐다. 이어 미소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영화 ‘올드보이’의 사설감방장 철웅의 싸늘함이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혹시 기자가 마음에 안들었을까?’

“엊그제 전남 여수 공연 중 갈비뼈를 다쳤어요. 석가이 역의 차순배가 날 들어올렸는데, 완력이 얼마나 셌는지 그만 갈비뼈에 금이 간 거죠. 진통제 먹으면서 공연을 해야 할 듯해요.”

연극 ‘마리화나’의 내관 용보 역을 맡은 오달수는 그런 배우다. 벌써 깁스를 하고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하는 상황. 말할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는 무대 위에 있었다. ‘마리화나’ 공연에 정말 ‘약(?)’을 먹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옆에 있던 의사도 아닌 연출가 고선웅씨는 그에게 “아 그거 있잖아요. ‘오×칼’을 먹어요”라는 돌팔이식 처방을 내렸다. 여자 출연자들에게도 그 처방을 남발했다. 여자 출연자들은 “대량 주문해서 할인을 받아보자”며 ‘마리화나’에 취한 듯 서로를 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네들의 팀워크가 돋보였다.

연극 ‘마리화나’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 대표가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은 작품. 세종실록에 근거해 여자들의 성을 도발적으로 그려 2006~2007년 대학로를 뜨겁게 달궜다. 초연 당시 이 연극에 반한 오달수가 출연을 약속했고, 마침내 2008년 시즌에 출연하게 됐다.

초연 당시 포스터는 요염한 여자 출연자들을 앞세웠지만, 이번엔 오달수가 단독 모델로 나섰다. 그만큼 배우 오달수의 존재감은 묵직하다.

“선배님(봉빈 역의 서주희)도 계신데 참으로 민망스럽죠. 다행히 상연 첫회인 5일 공연분이 매진됐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열심히 해야죠.”

무명들이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면 ‘마리화나’에 취한 듯 ‘때’가 묻기 마련. 영화와 CF를 넘나들었지만 배우 오달수는 여전히 열정적인 연극배우였다. 긴 무명 생활이 스스로를 낮추게 했고, 외로운 서울생활이 동료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배가시켰다.

CF출연 등으로 예전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는 생겼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보시’할 줄 모르는 습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친구와 나누는 막걸리 한잔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그는 “올 초 용돈이나마 손에 쥐어 드릴 처지가 됐는데, 아버님이 유명을 달리하셔서 아쉽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의 고향으로 돌아온 오달수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한달간 ‘주유소 주임’ 직함을 달았던 것 외에는 대학로 연극무대를 지켜온 터줏대감. 다른 건 아는게 없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재밌어요. 대사가 끝내줍니다. 웃겨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출이며 출연자가 의기투합했습니다. 너무나 극적입니다. 한번 보러오세요. 헬로! 에브리바디 컴온, 플리즈.”

영화에서 만난 그와 무대에서 만난 그는 분명 달랐다. 섬뜩한 광기도 느껴졌다. ‘연극의 달인’ 정도로 불러도 좋았다. 어쩌면 연극 ‘마리화나’는 오달수의 인생을 훔쳐보는 기회를 덤으로 줄지 모른다. 5일~1월24일. 대학로 마방진공작소. 2만5000원~3만원. (02)764-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