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생긴 한 청년이 ‘바보 연기’로 주말 안방 극장을 따뜻하게 데웠다. 떼쓰고 소리지르고 갑자기 패닉상태에 빠지는 지적장애 연기가 처음엔 너무 잘생긴 얼굴과 매치가 안돼 어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13년차 배우 인교진(33)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성룡이’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원래 그는 ‘도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연기활동을 해왔다. MBC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용춘공으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선덕여왕의 또 다른 숨겨진 훈남’으로 불렸다. 지난해 SBS 일일 드라마 <미쓰 아줌마>에서는 명문대-대기업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흥분하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매력남 이병철을 연기하며 주부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SBS<내일이 오면>에서 ‘바보 성룡이’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아줌마 팬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안다. 인기를 실감하나?

“식당 가면 이모들이 ‘어, 성룡이네?’ 하면서 밥 한그릇씩 더 주시고 그런다. 얼마 전에는 가족들과 식당에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보니까 부모님들이 농담처럼 ‘저쪽으로 가서 밥 먹어라’ 하셨다. 그동안 연기활동 하면서 알아봐주는 사람 많이 없었는데, 속으로는 좋아하시더라”

-‘도이성’이라는 이름으로 13년을 연기했다. 그간 쌓아온 것도 있을텐데 버리지 아깝지 않았나?

“인교진이 본명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버렸다. 도이성이라는 이름은 전 소속사 사장님이 무협지를 좋아해서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간 도이성으로 살았지만 왠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원래 미련이 없는 성격인가? 이름을 바꾸게 된 진짜 계기가 뭔가?

“한번 뭘 결심하면 다른 건 잘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그동안 외모 탓인지 착실하고 바른 ‘차도남’ 연기를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아무리 조연이라도 멋있는 척 포장해야 했다. 사람마다 이미지 메이킹 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신비주의가 불편하다. 그냥 팬들과 농담도 하고 재밌게 흘러가는 게 좋다. 인교진으로 첫 배역인 ‘성룡이’를 연기하고 나니 더욱 편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주민들 만나면 먼저 인사도 건네고 그런다”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인가 보다

“원래 넉살 좋은 성격은 아니었다. 21살에 MBC 공채 탤런트가 됐다. 다니던 대학도 휴학하고 방송사에 매일 출근해서 전화받고, 단역 하면서 매일 욕먹었다. 치열했고 또 괴로웠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먼저 밝아져야 버틸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고 서른 세 살에 지금 같은 코믹한 성격이 완성됐다”

-어떤 성격이었길래?

“학창시절만해도 조용한 성격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만 했고, 고등학교 올라와서는 혼자 멋진 척 많이 했다. 내가 <영웅본색> 주인공인줄 알았으니깐. 코피가 터지면 주변에서 여학생들이 ‘어머 교진아 코피나’ 이러면 솜으로 안 막고 그냥 피를 뚝뚝 흘리고 멋지게 훔쳤다. 고등학교 때 셀린디온의 ‘파워 오브 러브’에 꽂혀 이어폰 꼽고 책 읽고 앉아서 여학생들에게 주목받는 거 즐겼다. 사실 그 모든게 연출이었다. 하하하”

-그 때부터 배우의 끼가 엿보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에 인기 많았나?

“천안에 있는 북일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 옆에 북일여고가 생겼다. 사립학교였고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여학생 편지를 받고서는 할아버지 제사라고 거짓말을 하고 외출을 했다. 그날 마침 아버지가 친구인 씨름선수 이봉걸씨와 함께 보약을 지어서 격려차 오셨다가 딱 걸렸던 기억이 있다. 무지 혼났다”

-연기의 꿈은 언제부터 꾼건가?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고, 대학생활은 즐거웠다. 2학년 어느날 TV를 보다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길거리 캐스팅도 되고 하는데 난 그냥 내가 내 돈내고 연기학원 다녔다. SBS공채 탤런트 시험 봤다가 떨어지고 MBC 공채로 붙었다. 그때는 탤런트가 되면 바로 스타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2년간 단역만 했고 최근까지도 조연만 했다. 이제 조금씩 연기가 뭔지 알 것 같다”

-주진모+정준호 닮은 훈남 외모라는 기사봤나?

“술자리에서 들었다. 당연히 기분 좋다. 사실은 이병헌 선배님 좋아한다. 이선균 선배의 편안함도 닮고 싶다. ”

-동생 인두진도 배우로 데뷔 했다고 들었다. 같은 소속사에서 일하고 싶진 않았나?

“동생과 사이가 무척 좋다. 연예계 선배이기도 하지만 나이 차이가 7살이나 나 동생이 내게 ‘복종’하는 수준이다. (웃음)사실은 내가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해서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 그래서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했다. 하지만 같은 소속사에 있으면 아무래도 참견하게 되니까 신경 쓰게 될 것 같아서 다른 소속사를 소개했다.”

-차기작은 tvN <로맨스가 필요해2>라고 들었다. 대기업 ‘훈남’, 바보 ‘훈남’…. 이번엔 연애의 기술이 없어 버림받는 ‘훈남’ 인가?

“20~30대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라마다. 연애와 결혼을 분리해 생각하는 여자 선재경(김지우)의 옛 남자친구다. 드라마 대본 보면서 요즘 여자들이 진짜 이렇게 생각하나 하고 깜짝 놀랐다. 여자들의 심리를 이번 기회에 잘 알게됐다. 새로 들어가는 드라마 내용도 그렇고, 날씨도 좋고… 요즘 정말 연애하고 싶다.”
*사진은 11일자 화상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