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 사태’로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예슬은 지난 14·15일 이틀 연속 KBS2 월화극 <스파이명월> 촬영을 펑크냈고, 결국 <스파이명월>의 15일 방송은 스페셜로 대체됐다. 15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LA공항에 도착한 한예슬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제작환경이 너무 힘들었다. 후배들이 나 같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열악한 제작환경에 대해 고충을 털어놨다.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은 무척 심각한 상황이다. 쪽대본은 예사고 방송 당일까지 촬영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야 간신히 인터뷰할 시간이 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새벽에 촬영이 끝나면 2시간 잔 뒤 또 현장으로 갔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심지어 배우가 사고를 당하기라도 하면 방송이 결방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최근 MBC 수목극 <넌 내게 반했어>도 박신혜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결국 지난달 21일 스페셜 방송으로 대체됐다.

배우 이순재는 16일 오후 열린 MBC 주말극 <천 번의 입맞춤> 제작발표회에서 “배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한예슬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이런 문제가 왜 생겼느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은 절체절명의 조건에서 드라마를 찍는다. 이번 주 만들어서 다음 주 방송해야 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1주일 내내 밤을 샌다. 초인간적인 작업”이라면서 “제작환경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다. 프로듀서들도 적어도 6개월 전에 대본을 받아 여유있게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드라마가 생방송 체제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시청자들과의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 곧바로 저조한 시청률로 이어지기 때문. 실제로 사전 제작으로 방송된 <로드 넘버원>이나 <친구, 우리들의 전설> <파라다이스 목장> 등은 모두 한 자릿수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방송 관계자들은 “방송사도 사전 제작을 원하지만 성공 사례가 없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고영탁 KBS 드라마국장은 16일 <스파이명월> 사태와 관련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드라마 콘텐츠 제작 환경이 굉장히 열악하다. 그런 상황에서 1주일 동안 70분짜리 작품을 2편씩 만들다 보니 고질적인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면서 “앞으로 부단히 노력해 방송 제작 풍토를 개선해나가는 임무를 KBS가 앞장서서 수행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혜 기자 macond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