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강자가 없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2월 2014 브라질월드컵 조추첨에서 한국이 H조에 러시아·벨기에·알제리와 함께 편성되자 대부분 무난한 조편성이라며 반겼다. 브라질·스페인·독일급의 절대 강자가 없다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H조는 ‘희망’(Hope)의 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H조가 만만치 않은 조로 떠올랐다. 한국이 안정감을 찾지 못한 게 불안의 불씨를 지폈다. 이런 가운데 상대국들은 예상 외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게 희망이 될 것으로 예상된 H조가 걱정과 ‘공포’(Horror)의 조로 바뀌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은 지난달 28일 월드컵 출정식 경기로 열린 튀니지전에서 졸전 끝에 0-1로 패했다. 일찌감치 최정예 23명 엔트리를 확정해 조기에 훈련한 대표팀의 경기 내용은 기대를 밑돌았다. 믿었던 수비 조직력은 엉성했고, 공격에서는 뚜렷한 전술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무디고 힘이 없었다. 선수들이 몸 상태가 완전치 않다고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열린 H조 상대국들의 페이스보다 훨씬 떨어진 경기력은 불안을 부채질했다.

한국을 빼고 나머지 3개국은 평가전에서 무패를 달리고 있다. 러시아는 2경기를 치러 1승1무, 한국이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국으로 꼽히는 알제리는 1승, 벨기에는 2연승을 거뒀다. 러시아는 지난달 27일 슬로바키아를 1-0으로 꺾었고 지난 1일 노르웨이전에서는 1-1로 비겼다. 2경기를 통해 공격보다는 수비에서의 강점이 확인됐다. 러시아는 공수의 간격을 좁힌 채 전진해 조직적인 압박을 통해 상대 공격을 차단했다. 촘촘한 블록은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상대에게 쉽게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수비는 견고했지만 해결사가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적됐다.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제니트), 알렉산드르 코코린(디나모 모스크바)이 전방에 섰으나 골 결정력을 보여주지 못한 게 한국에겐 위안이다.

유럽 빅리거들로 호화 진용을 꾸린 벨기에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지난달 27일 룩셈부르크, 지난 2일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 각각 5-1, 2-0으로 완승했다. 최전방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에버턴)는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3골, 스웨덴을 상대로 1골을 터뜨렸다. 에이스 에덴 아자르(첼시)도 오른쪽 윙어 케빈 더브라위너(볼프스부르크)와의 콤비 플레이를 앞세워 스웨덴을 상대로 골맛을 봤다. 선수 개개인의 개인기는 이름값 그대로였다. 공격수들이 2대1 패스로 순간적을 공간을 만들어 침투하는 능력도 위협적이었다. 룩셈부르크전에서는 중앙 수비수의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로 골을 내줬지만 유럽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는 무실점 수비를 보여 전력이 안정화되고 있음을 보였다.

알제리도 지난 1일 아르메니아전에서 주전들을 제외하고도 3-1 승리를 거두며 만만찮은 전력을 자랑했다. 로이터 통신은 “알제리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들러리 역할을 거부했다”고 선전을 평가했다. 그런데도 바히드 할릴호지치 알제리 감독은 “후반의 슬럼프를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리듬이 안 좋고 페이스가 나쁠 때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벨기에였다면 우린 죽었다”며 선수들을 호통쳤다.

월드컵 본선이 다가오면서 상대국들이 더욱 집중도를 높이면서 전력을 다지고 있다. 한국이 H조에서 ‘행복한’(Happy) 결말을 맺기 위해선 남은 기간 미국 전지훈련에서 더욱 밀도를 높여 페이스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