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했다. 스포츠칸 새 코너 ‘스타 酒경야독(스타와 함께 낮에는 약하게, 밤에는 강하게 술을 마시자)’의 두번째 손님인 코미디 ‘두사부일체3－상사부일체’(이하 감독 심승보, 제작 두손씨네마)의 주인공 이성재와 손창민은 의외로 소리 없이 강했다. 두 배우와 대작한 곳은 술 빚는 향취가 짙게 나는 서울 광화문의 한 주점. 은은한 술 내음이 코끝을 간질이는 곡주로 술자리, 아니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성재와 손창민은 평소 젠틀한 이미지의 소유자들. 술잔을 채워줘도 오랫동안 나눠 마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조폭을 연기한 영화 ‘상사부일체’의 주인공들답게 두 배우는 술잔을 금세 비워갔다. 영화 ‘상사부일체’에서 이성재는 조폭 넘버2 계두식, 손창민은 큰 형님을 연기한다. 전작에서 정준호와 김상중이 맡았던 역할들이다. 인터뷰가 제대로 시작도 되기 전에 술병이 곧 바닥을 드러냈다. 손창민은 받아적느라 술잔을 비우지 못한 기자에게 “덩치에 맞지 않게 뭐냐”고 연방 구박했다. 조직의 ‘큰형님’ 손창민의 호령에 기자가 술잔을 비우면 넘버2 이성재는 다시 술잔 가득 술을 채워줬다. ‘원샷’을 선호하는 조폭 형님들, 아니! 두 배우와의 화기애애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1교시－술

먼저 범상치 않은 술 솜씨의 손창민에게 주량을 물어보았다. 손창민은 이미 술에 있어서는 달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건 나도 모른다”며 한잔을 또 들이켰다. ‘모른다’는 말이 왠지 ‘무한대’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주종은 뭘까?

“난 맥주를 가장 좋아해요. 맥주를 좋아해서 일본 삿포로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맥주 페스티벌이 열리면 친구들과 다 함께 구경가서 마시죠. 독주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대신 맥주를 이용한 폭탄주를 즐겨 마셔요.”

조용히 술잔을 비우던 이성재는 “술보다 술자리를 좋아한다”며 “분위기를 맞출 정도만 마신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손창민은 “성재는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마시는 스타일”이라며 “체력이 좋아선지 술실력이 꽤 세다”고 증언했다. ‘상사부일체’ 촬영장에서는 특별히 ‘회식’ 자리가 없었다. ‘대가리’ 박상면·‘김상두’ 김성민도 손창민 못지않은 주당들이어서 촬영이 끝나고 식사를 하면 술이 곁들여져 그게 그냥 ‘회식’이 됐다. 기자가 “매일 회식한 거냐”며 놀라워하자 이성재는 “감독과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고 변명했다.

#2교시－성공·실패학

이성재와 손창민은 ‘상사부일체’를 촬영하면서 처음 만났다. 서로 안면은 없었지만 이성재와 손창민의 뇌리에는 서로가 “실력 있는 좋은 후배” “닮고 싶은 선배”였다. 손창민은 드라마 ‘키드갱’ 촬영이 시작됐을 때 ‘상사부일체’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당연히 전작에서 다른 배우가 연기한 역할을 한다는 건 부담이 있죠. 계두식을 누가 연기하느냐가 저에게 가장 중요했어요. 이성재가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곧장 생겼어요.”

이성재는 ‘상사부일체’가 ‘두사부일체’ 시리즈의 3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시나리오를 읽었다. “코미디 영화를 너무 하고 싶었던 참이었어요. 그때 ‘상사부일체’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전편과 따로 떨어져 놓고 봐도 너무 재미있더군요”

전작의 성공이 부담되지 않을까? 이성재는 진지한 눈빛으로 “주인공 4명이 바뀌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며 “분명히 다 바뀌어서 보고 싶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분들을 극장으로 오게 하는 게 지금 우리들의 소임”이라고 단단한 각오를 밝혔다. 손창민은 술잔을 비우며 “전작과 색깔이 다르지만 웃음과 재미는 담보한다”며 “관객들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성재는 흥행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잘될 거로 믿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실패가 두렵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출연한 드라마 ‘천국보다 낯선’이 애국가보다 시청률이 낮은 2.7%, 영화 ‘신석기 블루스’가 개봉주에 1% 예매율을 기록하는 실패를 경험한 바 있어 이젠 아무것도 두려운게 없다”며 웃었다.

이를 듣던 손창민은 “배우에게 실패는 또 다른 자산”이라고 30년 경력에서 나온 교훈을 일러줬다. “성공으로 얻은 돈과 명예는 누군가에 의해 뺏길 수 있지만 실패의 교훈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3교시－선배·후배학

인터뷰가 시작된 지 2시간이 지나자 손창민이 자신의 주종목인 맥줏집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옮긴 장소는 세계 모든 맥주들을 맛볼 수 있는 맥주 전문점. 일본·독일·미국산 맥주에 북한산 대동강 맥주까지 준비돼 있는 집이었다.

‘가장 뛰어난 후배가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자 손창민은 이성재의 손을 꼭 잡고 “이성재만 한 배우도 없어요. 이성재 정도의 지명도라면 촬영이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쁠 텐데 늘 선배들이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 있죠. 요즘 애들은 촬영 끝나면 그냥 사라져 버리잖아! 내가 만난 후배 중 가장 연기를 잘하면서도 인간성이 좋은 배우”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성재가 선배의 칭찬에 부끄러운지 건배를 외쳤다. 한잔을 쭉 들이켠 후 이성재는 “선배님과 함께 일하면서 30년 동안 롱런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알 수 있었다”며 “제가 부족했던 점이 뭔지를 알았고 좀더 모든 일에 유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고 화답했다.

#4교시－땡땡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재와 손창민은 기자의 질문 없이도 배우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또한 어려운 한국 영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온 세계 맥주를 돌아가며 마시며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지고 손창민이 기자에게 “개그맨 이혁재와 꼭 닮았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조금만 더 가면 위험지대에 들어갈 것만 같은 오후 10시30분. 전날 녹화한 오락프로그램 방송시간이 다 됐다는 매니저들의 독촉으로 술자리는 아쉽게 끝났다. 오후 7시에 시작해 3시간30분 만에 끝났지만 이날 마신 술의 양은 엄청났다. 다음날 해장국이 그리 시원할 수 없었다.

〈글 최재욱·사진 김기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