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개그맨보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남자가 있다. 개그맨과 코미디언, 무엇이 다르냐고? 그의 말에 따르면 코미디언은 ‘연기로 웃기는 사람’, 개그맨은 ‘말로 웃기는 사람’이다. 어느덧 서른 중반의 나이에 들어섰지만 TV를 보는 사람 아무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 남자, 무대만 오르면 힘을 얻는 남자, 언젠가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꿈을 가진 남자 김병만을 스포츠칸이 만났다. 한 남자가 살아온 대서사시를 듣는데 술이 빠질쏘냐. 정신없는 스케줄로 바쁜 김병만을 위해 보양식전문점 여의도 ‘수림’을 골랐다. 해물닭볶음탕이 끓는 증기 위로 어렴풋이 그의 15년 연기인생이 스쳐갔다.

▲ 코미디언 김병만

주경야독(낮에는 가볍게 밤에는 독하게)의 모토에 걸맞게 시작부터 소주·맥주 폭탄주가 돌았다.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자꾸만 술을 권했다. 이러다 취하면 술만 먹고 말겠다는 생각에 초조해진 기자는 그의 근황부터 빠르게 물어나갔다.

“하루에 서너 시간 자는 것 같아요.”

그의 스케줄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일주일에 다섯 개를 소화한다. 현장적응이 중요한 버라이어티보다 미리 합을 맞춰 봐야 하는 연기를 즐기는 탓에 그 빡빡함도 만만치 않다. MBC 수목드라마 ‘대~한민국 변호사’(이하 ‘대변’)에서 중국집 배달부 전이만 역, OBS 일일시트콤 ‘오포졸’의 김포졸 역, 거기다 지금의 김병만을 있게 한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있다. 그외에도 SBS ‘접속무비월드’, ETN ‘투캅스’ 등 현재 국민MC 유재석 못지않게 바쁜 이가 바로 그다.

“그래도 하고 싶은 연기라 너무 좋아요. 이젠 적응됐어요.”

그를 지금까지 있게 한 ‘달인’이지만 그는 그 이후도 걱정하고 있다. 실제 달인을 출연시키는 형식도 생각해보고, 그냥 접고 다른 코너를 해볼까 생각하기도 한단다. 만일 새 코너를 한다면 ‘뻥쟁이 할아버지’ 컨셉트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들이 종종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과장해서 말씀하시잖아요. 그 부분을 키워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는 인터뷰 와중에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천생 코미디언이다.

▲ 인간 김병만

그는 전북 완주에서 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그를 좌지우지한 것은 소설 ‘톰소여의 모험’이다.

“희극인이 되고 싶었어요. 무술을 하게 된 이유도 연기에 필요할 것 같아서였죠. 톰소여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얻었는데 막대기에 물고기를 꽂아 구워먹기도 하고, 나무를 이용해 뒷동산에 집도 지었죠. 어느 날 비닐로 집을 덮어놓으니까 이상한 시설인 줄 알고 정찰기가 머리 위에 떠다니더라고요. 지나가는 사람들 빠지라고 산에 함정도 파고 그랬죠.”

평소엔 조용하지만 왠지 멍석만 깔아주면 잘 까불었던 그는 희극인의 꿈을 위해 집에서 받아든 돈 30만원을 가지고 20세의 나이에 서울에 올라온다. 그후 4년간 추울 땐 입이 돌아갈 것 같은 좁은 자취방과 자고 일어나면 먼지로 목에 피딱지가 생기는 극단생활을 계속했다. 연기가 힘들어 매니저를 해보란 권유에 혹했으나 결국 그 말에 속아 8개월 동안 막일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이정재·이영애 주연, 오기환 감독의 영화 ‘선물’에 출연할 코미디언 지망생을 뽑는 오디션에 붙어 데뷔의 영광을 안는다.

“그땐 명절이어도 집에 가보지 못 했어요. 유명해지기 전까진 아버지와 대화도 못 했고요. 친구들도 그랬어요. 왜 서울까지 가서 엑스트라만 하느냐고요. 하루는 어머니와 통화하다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했냐’고 원망한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말은 너무 후회돼요.”

지금 ‘1박2일’을 통해 떠오르는 이수근과는 영화 ‘선물’ 때부터 함께한 사이다. 그리고 현재 ‘달인’을 함께한 노우진과도 8년 지기다. 이수근은 한때 연기를 포기하려던 김병만에게 힘을 줬고, 김병만은 그 모습 그대로 연기를 그만두려던 노우진을 붙잡았다.

“수근이가 연기로 인기를 얻었다면 부러웠을 텐데, 버라이어티라 괜찮아요. 우린 갈 길이 다른 걸요. 언젠가 이수근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연기자 김병만이 초대되는 것. 우리가 꿈꾸는 미래예요.”

▲ 사업가 김병만

김병만은 지난해 B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현재 김병만을 포함해 12명의 연기자가 소속된 회사다.

“말 그대로 패밀리의 개념이에요. 소속된 연기자들이 다 의리파죠. 이득을 얻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연기자를 구속하지 않고 음반이든 연기든 자유롭게 발산시켜주고 싶어요.”

벌써 소속연기자 송준근, 허미영 등이 모여 개그그룹 ‘지존’을 만들었다. 매달 한번씩 떠나는 엠티로 패밀리는 끈끈한 조직력을 다진다.

“아직은 연기가 좋아요. 그래서 회사일은 모두 매니저에게 일임했죠. 하지만 꿈은 있어요. 언젠가는 영화제작에 도전하고 싶어요. 이경규 선배님만큼의 규모는 아닐지 몰라도 꼭 해보고 싶어요.”

술이 얼큰하게 취하니 이 코미디언 숨쉴 틈 없이 좌중을 웃기고 또 웃긴다. 코미디가 곧 생활이자 생명인 한 희극인의 살아 있는 모습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모두를 웃길 일에만 골몰하는 코미디언 김병만, 앞으로 그가 꺼내놓을 웃음보따리의 양을 가늠하자니 그저 아찔할 뿐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 그대를 진정한 웃음의 달인에 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