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스포츠칸의 인기코너 ‘주경야독’(낮에는 약하게 한잔, 밤에는 세게 한 잔)에 새 MBC 주말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극본 이정선, 연출 정세호)의 첫 방송을 앞둔 문소리를 초대해 놓고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인터뷰 일자를 기다렸다. 문소리가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주당이었기 때문이다. 문소리를 가을을 앞당기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밤 서울 한남동의 한 중국식당에서 만났다. 그런데 아뿔싸! 매니저가 “새벽부터 촬영이 있다”며 술 마시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기자의 급실망하는 표정을 눈치챈 문소리가 화사한 미소로 “어떻게 한잔도 안 먹을 수 있느냐”며 “오늘은 살살 하자”고 먼저 포문을 열며 맥주 한잔을 따라주었다. 문소리와 독한 술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진한 솔직 토크가 시작됐다.

문소리와 맥주 한잔을 들이켜며 두 번째 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해 말 안방극장 데뷔작인 ‘태왕사신기’에서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었던 문소리는 올해 초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통해 명예회복을 했다. 팬들 사이에서 “문소리는 역시 영화배우”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왜 드라마에 또 도전할까? 문소리는 직설화법의 대가답게 곧장 “드라마를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대답했다.

“워낙 제가 이정선 작가를 좋아해요. 이작가의 강력한 프러포즈도 있었던 터라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진짜 드라마의 정수를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소리가 드라마 출연을 결정할 때 가장 고민한 것은 장르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장준환 감독과 결혼한 아직 ‘새댁’인 문소리에게 가장 큰 딜레마는 ‘출산’이었다. “나이 때문에 양가 집안에서 모두 빨리 임신을 해야 한다고 하셨고, 저와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출산을 약간 미루더라도 드라마에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 고민하다) 그런데 식사 안 하셨죠? 우리 밥 좀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될까요?(일동 폭소)”

문소리는 메뉴판을 건네며 음식을 시킬 것을 권했다. 음식이 나오고 민생고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이야기가 이어졌다. ‘드라마 현장이 낯설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평소 ‘비유의 여왕’답게 멋진 대답이 나왔다.

“이제까지 밥상을 차려놓으면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먹다가 지금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음식을 먹는 기분이에요. 조금 어색하고 서툴죠. 다시 신인이 된 기분이에요. 제가 제일 막내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두를 선배라고 여기죠. 영화 촬영장 필름 카메라가 아닌 ENG 카메라가 앞에 서니 이상하게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처음 연기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또 다른 도전에 나선 문소리에게 가장 큰 버팀목은 역시 남편 장준환 감독이다. 남편 이야기가 나오지 평소 활달한 모습과 달리 두 눈에 하트가 그려졌다. 장감독은 작품에 몰입하면 예민해지는 문소리를 위해 대본 연습도 도와주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한번은 집에서 남편과 함께 대사 연습을 하는데 극중 감정을 그대로 실어서 하다보니 집안 어른들이 싸우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죠. 그만큼 남편이 내 연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덕분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문소리는 ‘내 인생의 황금기’에서 이기적인 성향의 북디자이너 이황 역을 맡았다. 다혈질이고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인물이다. 드라마 초반 태국에서의 불륜신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사를 보니 베드신도 등장한다던데…’라고 묻자 폭소를 터뜨렸다.

“온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인데 야해봤자 얼마큼 야하겠어요? 그것보다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문제죠. 시부모께도 할 말을 참지 않고 다하는 왕싸가지 며느리였다가도 이른 아침 완벽한 한정식을 차려내는 현모양처예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주위 어르신들도 다 볼 텐데 극중 캐릭터와 저를 혼동하실까봐 조금은 걱정돼요. 원래 저는 시어머니와 정말 잘 지내는데 드라마에서 시부모들에게 대드니 ‘실제로는 저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연기는 연기일 뿐이니 다르다는 것을 어르신들도 알아주시겠죠?(웃음)”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문소리와 마지막을 건배를 나눴다.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 눈빛의 문소리는 “결혼은 꼭 해봐야 한다”며 결혼 예찬론을 펼쳤다.

“정말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벽이 생긴 것 같아요. 밖에 나와 있어도 생각만 해도 너무 든든해요. 이게 가족의 힘인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도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어요. 꼭 심각하지 않아도 작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주말에 온 가족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될 겁니다.”

- “잘 어울린다”며 결혼 부추긴 포장마차 아주머니 고마워요 -

결혼생활에 큰 만족감을 드러내온 문소리가 남편인 장준환 감독과의 연애시절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문소리와 장준환 감독의 깜짝 결혼발표는 가까운 지인들도 모를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 살았던 두 사람은 동네 포장마차에서 꾸준히 만남을 가져왔고, 결국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수서와 일원동에 살고 있었는데 같이 귀가를 해도 주위 사람들이 의심을 하지 않았죠. 그리고 주로 중간지점의 포장마차에서 자주 만났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전혀 못 알아보셨죠. 그 덕분에 그곳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며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우리를 지켜본 아주머니께서 ‘정말 잘 어울린다’며 꼭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라셨어요. 그렇게 해서 결국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 뒤 아주머니를 찾아가 고마움을 담은 선물을 전했죠. 아주머니도 ‘정말 잘됐다’며 크게 기뻐해주시더군요. 그래도 그 아주머니께서 끝까지 우리를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호호호.”

결혼 후 경기도 평택에 신접살림을 마련해 더 이상 포장마차를 찾아가지 못한 것을 내심 안타까워하면서도 포장마차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준범기자 pharos@kyunghyang.com·사진 권호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