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스타여선지 인터뷰 전부터 수시로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스포츠칸의 새 코너 ‘주경야독’(낮에는 약하게 밤에는 독하게 술을 마시자)의 세번째 손님으로 미스터리 궁중괴담 ‘궁녀’(감독 김미정, 제작 영화사 아침·씨네월드)의 개봉(18일)을 앞둔 박진희를 초대했다. 워낙 호탕한 성격으로 유명한 박진희인지라 술 실력은 얼마나 되는지, 술자리에서 얼마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꺼낼지 기대됐다. 가을이 깊어가는 일요일 서울 강남의 한 퓨전 일식집에서 박진희를 만났다. 박진희는 하루종일 이어진 인터뷰 스케줄에 피곤할 만도 하건만 특유의 환한 미소를 활짝 지으며 나타났다.

▲1교시, 술

자리에 앉자마자 주종을 소주로 결정했다. 그러나 메뉴판을 보니 일반 소주와 달리 도수가 무려 41도나 되는 술이었다. 은근히 걱정이 되는 기자와 달리 박진희는 “이거 꽤 세겠는데”라며 한잔을 쭉 들이켰다. 주량이 궁금해졌다. 예상한 대로 박진희는 내숭 떨지 않고 “한 소주 1병반은 문제 없이 비울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내 주량은 철저히 노력에 의해 늘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낙 술이 안 받는 체질이었어요. 데뷔 때는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너무 힘들었죠. 그러나 이 일을 하려면 술을 못 마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이기냐 네가 이기냐 하는 생각으로 ‘술과의 전쟁’을 벌였죠. 그랬더니 이제는 웬만큼 마셔요. 그래서 술 못 마신다는 후배들은 그냥 두고 보지 못해요. 하하하.”

‘궁녀’는 박진희의 첫 단독 주연 영화. 박진희는 촬영 초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회식을 두번이나 개최했다. 첫 회식에서 윤세아·서영희·임정은·전혜진·김남진 등 출연진과 마음을 열고 친해졌다.

“우리 여배우들이 모두 얌전을 떨고 술을 못 먹을 거 같죠? 안 그래요! 그날 술자리 초반 내가 우리 본 모습을 보일 정도로 마시자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마시기 시작했는데 너무 잘 마셔 놀랐어요. 내가 명함을 못 내밀 정도더라고요.”

▲2교시, 성적 비결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대학원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박진희는 현재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3학기에 재학 중이다. 지난 상반기 영화 ‘궁녀’와 드라마 ‘쩐의 전쟁’을 동시에 촬영하면서도 올 A 성적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박진희는 ‘의외성’이 자신 성적의 비결이라며 겸손해했다.

“연예인이 입학하면 출석을 워낙 잘 못하잖아요? 불성실할 것 같은 사람이 빠지지 않고 잘 나오니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또한 무식이 무기인지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다해서 시험 답안지를 빼곡하게 다 채우니 노력이 가상해 점수를 잘 주나봐요. 얼마 전 교수님이 저에게 ‘정말 답안지에 정답 외에도 남다른 견해를 많이 쓰더라’고 말씀하셔 한바탕 웃었어요.”

박진희가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는 나중에 유치원을 설립하고 싶은 꿈 때문이다. 유치원 설립의 꿈은 도대체 언제쯤 이룰까?

“쉰 정도 넘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유치원을 설립하는 데 돈이 정말 많이 들더라고요. 지금부터 뼈가 부서져라 돈을 벌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투자를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저는 제 힘으로 세우고 싶어요.”

▲3교시, 남자

술 이야기를 하다보니 금세 소주 한병이 비워졌다. 이야기의 주제가 깊어가는 가을 밤의 외로움을 달래줄 남자로 돌아갔다. 박진희는 “매해 새해 아침 올해에는 좋은 남자와 사귀어야겠다고 다짐해요.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요. 그러기를 벌써 5년째예요. 올해도 두 달밖에 안 남았는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도 집에서 엄마랑 지내야 할 것 같아요”라며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박진희의 외로움을 타개하는 비책은 뭘까? “성격이 워낙 긍정적이어선지 외로움을 별로 느끼지 못해요. 학교에 다니고 영화 ‘궁녀’ 홍보하고 한 달 전 태어난 조카와 놀다보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어요. 외로움을 자꾸 이야기하는 게 혹시 기자님이 가을이 돼서 너무 외로우신 거 아니에요?(일동 폭소)”

올해로 서른 살이 됐는데 결혼 계획이 궁금해졌다. 박진희는 “5년 후”라고 대답했다. “얼마 전 아직 미혼인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언니와 내기를 했어요. 5년 안에 먼저 결혼하는 사람이 벌금 1000만원을 내기로 했어요. 앞으로 5년 동안은 죽어라 일만 해야 할 것 같아요.”

박진희는 일하고 있는 매니저와 10년, 스타일리스트와는 7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돈을 좇아 다니는 요즘 보통 연예인과는 다른 면모다. 박진희는 매니저에게 갑자기 건배를 권하더니 “나는 사람들이 먼저 떠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안녕’을 절대로 고하지 않아요. 한번 믿은 사람은 끝까지 믿는 편이에요. 이대로 간다면 나중에 영화 ‘라디오 스타’의 주인공들처럼 되지 않을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4교시, 명감독

박진희는 지난해부터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쩐의 전쟁’의 연속 흥행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다. ‘궁녀’의 개봉을 앞둔 현재 충무로에서 박진희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이제 박찬욱·김지운·봉준호 등 충무로 톱클래스 감독들과 일해 봄직도 하다. 4병째 술병을 따며 “명감독들과 일해 봐야되지 않느냐”는 우문을 던지자 고개가 숙여지는 현답이 돌아왔다.

“작품 두 개 정도 잘됐다고 그 감독님들과 이제 일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은 건방진 생각 같아요. 배우로서 저도 명감독님들과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죠. 그러나 그 분들이 저에게 영감을 느낄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그분들이 배우의 위상에 따라 주인공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도 그분들의 감성과 연출 방향에 공감할 수 있는지도 고려해봐야 할 것 같고요.”

박진희는 ‘궁녀’에 거는 남다른 기대감을 피력했다. 박진희는 설레는 눈빛으로 “아직도 제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재미와 스릴, 작품성을 골고루 갖춘 영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후 6시부터 이어져 다섯이서 소주 네병을 눈 깜짝할 사이 비우니 벌써 시간은 오후 8시30분. 근처에서 박진희가 정준호·김정은·김원희 등과 함께 활동하는 자선모임 ‘따사모’의 행사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움을 가진 채 박진희를 보내줘야만 했다. 비운 술병 수는 많지 않지만 박진희의 뿜어내는 건강한 에너지에 기분이 좋은 취기가 그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글 최재욱·사진 김기남기자 jwch6@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