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중계석을 지킨 게 아니라 90분간 그라운드를 누빈 것으로 오해라도 할 판이었다.

중계석에 앉아 있는 동안 온몸이 땀에 젖었다. 러시아전을 마친 뒤에는 상하의 가릴 것 없이 땀범벅이 돼 있었다. 사실 러시아전 후반전 중계를 하는 동안에는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하는 생각까지 스쳐갔다.

지난 시간을 거슬러 봐도 중계석에 앉아 이토록 땀을 많이 흘려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중계석에서도 체력전을 벌여야 했던 이곳의 특성은 역시 습도에 있었다. 한국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러시아전이 열린 쿠이아바의 판타나우 경기장은 ‘습식 사우나’를 떠올리게 했다.

26도를 오간 기온은 그런 대로 적응할 만했지만 체감 습도는 실로 엄청났다. 평소 땀을 잘 흘리지 않는 ‘건조한 스타일’로 통했는데, 이곳에선 달랐다. 중계 시작과 동시에 얼굴에 땀방울부터 맺히더니 비를 맞은 듯 젖어가기 시작했다.

판타나우 습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라던데 명성과 다르지 않았다. 듣자하니 인근 쿠이아바 강을 따라서 펼쳐진 습지가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영화에서나 봤던 무시무시한 ‘아나콘다’도 출몰하는 곳이라는데, 그러고보면 그저 습하기만 하다면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후반전 중계를 하면서 같은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앉아서 중계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선수들은 어떨까….’

체력이 고갈돼가는 후반전을 뛰면서 선수들이 느낀 피로감은 엄청났을 것 같다. 상대 러시아 선수들뿐 아니라 온몸을 무겁게 하는 습도와도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시종일관 한 걸음 더 뛰려는 모습으로 점유율에서 앞선 경기를 한 것을 보면 어떤 마음으로 러시아전에 나왔는지 짐작이 된다.

다행히 대표팀의 16강 진출의 키가 될 23일 알제리전은 브라질 남동부의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린다. 그곳은 평균 기온이 18도로 판타나우에 비하면 매우 쾌적하다고 한다. 대표팀 선수들의 기민한 움직임이 기대된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은 ‘습지 혈전’을 치른 뒤 ‘피로해소’를 우선시했는데 우리 중계팀도 러시아전 중계를 마친 뒤에는 원기회복을 위해 고깃집으로 달려갔다. 아쉽게도 판타나우에는 한국식당이 없다. ‘브라질식 고깃집’을 찾았는데 우리 생각과는 달리 양념이 너무 짰다. ‘영양 보충’ 한번 하려다가 ‘염분 보충’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