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류중일 감독은 비장했다. 27일 대만 퉁이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모아놓고 “한국야구 자존심을 살리자. 최선을 다하는 승부를 하자”고 강조했다. 전날 소프트뱅크전에서 0-9로 대패한 뒤 선수들의 독기를 끌어내려했는데 선수들도 류 감독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성 김상수는 소프트뱅크전 참패를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박한이는 “소프트뱅크전에서 삼진을 연속으로 세개나 먹고 잠이 잘 오질 않았다”고 털어놨다. 소프트뱅크 패전은 어쩌면 약이었다. 다시 만나 복수전 기회를 잡겠다는 선수들의 의지가 삼성을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좌타 전진배치 통했다

삼성은 상대 선발로 왼손투수가 올라왔던 예선리그 1·2차전과 달리 왼손타자들을 앞세웠다. 베테랑 왼손타자 박한이를 2번에 세우고, 왼손 중장거리포 채태인을 3번타자로 배치해 4번 최형우까지 연결되는 좌타 라인을 형성했다. 퉁이 오른손 선발 세스 애서튼을 겨냥한 타순이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국내리그에서 했던 패턴과 큰 차이는 없다. 상대 선발을 감안해 왼손타자들을 타순 앞쪽으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효과적이었다. 삼성의 득점이 좌타라인에서 뿜어나왔다.

0-0이던 3회초 1사 1·2루에서 박한이의 중전안타에 이어 채태인의 좌익수 희생플라이가 나왔다. 단숨에 2점이 들어왔다. 3-3으로 동점으로 몰린 가운데 터진 결승 투런홈런 역시 왼손타자 최형우 방망이에서 나왔다.

◇권혁의 눈물, 권오준이 닦다

3-1이던 6회 시작과 함께 삼성은 선발 배영수에 이어 왼손 권혁을 올려 ‘지키는 야구’에 들어갔다. 권혁은 왼손타자인 3번 판우슝에게 볼넷을 내주고 폭투까지 기록해 무사 2루로 몰린 뒤 장타이산을 3루 땅볼로 잡아내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5번 대타 궈준위에게 직구를 연속으로 던지다 동점 투런홈런을 맞고 말았다. 순식간에 3-3. 삼성은 권혁에게 한 타자를 더 상대하게 한 뒤 사이드암 권오준에게 마운드를 넘겼는데 이후로 지키는 야구가 제대로 발동이 걸렸다.

삼성 오치아이 투수코치는 사이드암 권오준이 대만전 키플레이라고 일찍감치 낙점했는데 권오준의 피칭은 기대 이상이었다. 권오준은 7번 가오즈강을 삼진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한 것을 시작으로 2.1이닝을 삼진 4개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사이드암 변화구에 약한 대만 타자들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했다. 권오준에 이어 6-3이던 9회 마무리로 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랐다. 승리를 확인하는 신호였다.

◇빅볼+스몰볼 절묘한 조합

삼성은 2-0이던 4회초 선두타자 5번 박석민이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경기 중반 흐름을 가져오기 위해 1점이 더 필요했던 류 감독은 6번 신명철 타석에서 희생번트 사인을 낼 만했다. 그러나 5회 이전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번트를 자제하는 평소 소신대로 강공을 선택했다. 신명철은 유격수쪽 강습 내야안타로 부응해 무사 1·2루를 만들었다.

류 감독이 무작정 강공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무사 1·2루에서는 벤치가 움직였다. 7번 강봉규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를 만들었고, 8번 진갑용의 1루쪽 강습 땅볼이 이어져 3점째를 뽑았다.

5-3이던 9회초에는 선두타자 강봉규가 중전안타로 출루하자 진갑용의 희생번트로 1사 2루를 만들었다. 김상수의 2루 땅볼로 2사 3루가 된 뒤 대만투수 왕징밍의 폭투가 나와 쐐기득점이 이어졌다. 오승환이 버티는 상황에서 3점차는 100% 승리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