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대표팀 공격수 손흥민(22·레버쿠젠)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23일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손흥민의 얼굴에는 슬픔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자신의 월드컵 데뷔골에 대한 기쁨 대신 팀 패배의 안타까움의 흔적만 진하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손세이셔널’은 쉽게 주저앉지 않겠다고 했다. 희망이 있는 한 한국 축구의 명예를 걸고 마지막까지 뛰겠다고 다짐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알제리전을 마친 소감을 묻자 “졌으니…”라며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이어 “아쉽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다시 할 수 있다면 이렇게 실점을 많이 안했을텐데 그래서 더 아쉽다”고 했다. 손흥민은 경기를 돌아보며 “초반 집중력이 너무 안 좋아 알제리가 편하게 공격하게 만들어줬다. 초반부터 바짝 붙어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팀 패배 앞에선 월드컵 첫 골의 기쁨은 크지 않았다. 그는 “첫 골 넣은건 중요치 않다. 골 넣은 기쁨보다 진 것이 더 크고 마음이 아프다”고 거듭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패배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알제리전에서 손흥민의 활약은 눈부셨다. 전반에는 주춤했지만 후반에는 특유의 폭발적인 돌파를 앞세워 답답한 공격진의 활로를 열었다. 후반 5분 기성용의 로빙패스를 문전에서 받아 수비수를 제치고 통렬한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전반 내내 슈팅 하나 없었던 대표팀의 답답한 공격 흐름에 불씨를 지핀 손흥민의 첫 슈팅이 환상적인 골로 연결되며 한국은 추격의 힘을 얻었다. 손흥민은 이후에도 저돌적인 드리블 돌파와 과감한 슈팅으로 알제리 수비진에 계속 위협을 줬다. 공격진 가운데 단연 빛나는 활약이었다.

그의 활약을 외국 언론에서도 높게 평가했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알제리전을 치른 한국 선수의 평점을 대부분 5~6점으로 매겼으나 손흥민과 구자철(마인츠)에게만 7점을 줬다. 손흥민에 대해서는 “반짝이는 빛”이라며 높게 평가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웹진인 블리처리포트도 손흥민이 “공간을 주어졌을 때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고, 준수한 골을 기록했다”며 기성용(스완지시티)과 더불어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7점을 줬다.

안타까운 패배 속에서도 손흥민의 존재감은 한국 축구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됐다. 한국은 조별리그 최종전인 벨기에전에서 다득점 승리를 노려야 하는 만큼 공격진의 활약이 절실하다. 월드컵 데뷔골을 맛보며 컨디션을 끌어올린 손흥민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손흥민도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벨기에도 강한 팀이지만 알제리가 우리에게 많은 골을 넣었듯이 우리도 오늘 후반처럼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팀 패배의 진한 아쉬움 속에서도 손흥민은 한국 축구의 확실한 공격 에이스임을 알렸다. 벨기에전에서 손흥민이 후회없는 폭풍질주를 한다면 한국은 기적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