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전술이 바뀔 것이라고 미리 알려줬는데도 대처가 미흡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인데도 수비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기존 전술을 고수하다가 공격 축구로 나온 상대에게 흠씬 두들겨맞았다.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위기에도 감독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한국축구 국가대표팀은 23일 브라질월드컵 H조 조별리그 알제리와의 2차전에서 뼈아픈 2-4 패배를 당했다. 3골을 내준 전반 45분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 0-5 패배 이후 최악의 졸전이었다. 자력 16강 진출은 물 건너갔고 조별리그 탈락이 유력해졌다.

홍명보 감독은 알제리전에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전 때와 똑같은 베스트11과 포메이션을 들고나왔다. 반면 1차전에서 벨기에에 1-2로 역전패한 알제리는 선발멤버 5명을 바꿨다. 알제리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한국전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팀 전술과 선수 구성의 변화를 분명하게 시사했다. 한국에 패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홍 감독의 처방은 똑같은 선수와 똑같은 전술로 맞서는 것이었다. 알제리는 예고한 대로 공격 성향이 강한 선수들로 꾸려 초반부터 강공으로 나왔다. 개인 기술이 좋은 선수들은 측면과 중앙의 한국 수비 뒷공간을 번갈아 공략했다. 4골 중 3골이 벨기에전에 결장한 2명, 교체투입된 1명으로부터 나왔다.

홍 감독은 러시아전처럼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전반을 버티다가 후반에 승부를 보려는 작전을 고수했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나온 알제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국 수비진은 확 바뀐 알제리 공격진의 스위칭 플레이에 무력하게 유린당했다. 전반 3실점 중 2골을 그렇게 내줬다.

홍 감독은 “알제리 전술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슈팅 한 개도 날리지 못하고 무너진 전반전에 홍 감독은 벤치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만 했다. 상대 공격에 고전하는 수비 불안을 타개하려면 적극적인 공격으로 맞불을 놓거나 수비안정을 꾀할 방책을 내놨어야 했다. 1차전 러시아전에서 부진했던 공격수 박주영(아스널)은 여전히 부진했다. 후반 초반 박주영과 교체돼 들어온 김신욱(울산)이 더 잘했다.

3경기 단기전 승부로 16강행을 결정짓는 월드컵에서 감독의 전술전략은 팀 승패와 직결된다. 상대에 따른 유연한 전술 대처와 발빠르고 적극적인 벤치의 개입이 중요하다. 그러나 홍 감독은 변화 대신 안정에 초점을 두는 바람에 상대의 적극적인 전술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공격적인 카드를 쓰는 데도 주저했다.

실낱같은 16강 희망을 안고 치르는 27일 벨기에전에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최소한 2골차 이상의 완승이다. 그런 벼랑 끝에서 홍 감독이 꺼낼 카드는 안정일까, 변화일까. 홍 감독의 마지막 선택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