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부종목’ 스키에서 금메달 딴 스노보더 레데츠카
![[평창 올림픽]볼트가 수영 우승한 격이라는데…“둘 다 그냥 언덕 내려오는 거예요”](https://img.khan.co.kr/news/2018/02/20/l_2018022101002408100202271.jpg)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얘기죠.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스노보드가 주종목인 에스터 레데츠카(23·체코·사진)가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여자 슈퍼대회전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데 대한 허승욱 MBC 스키 해설위원의 말이다. 허 위원은 동계올림픽에만 5회 연속 출전한 한국 알파인스키의 레전드. 평생 스키만 탔던 그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1998 나가노 올림픽 알파인 회전에서 기록한 21위였다. 그렇게 높았던 알파인스키 세계의 벽을, 그것도 스키가 주종목이 아닌 스노보드 선수가 단숨에 넘어버렸으니 그의 충격이 어떨지 짐작할 만하다.
허 위원은 “스키에선 25번 뒤에서 타서 우승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은 알아요. 그게 말이 안된다는 것을.”
스키는 20번 안까지 우승후보들이 먼저 타고 하위권 선수들은 뒤에 나오는 방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스노보드 선수가 스키에서 우승한 것은, 말하자면 사격의 진종오가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나, 육상 100m 우사인 볼트가 올림픽 수영 100m에서 우승한 것과 같다. 한마디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얘기다.
레데츠카에게 0.01초 차 뒤져 금메달을 내준 오스트리아 안나 파이트의 첫 반응도 그랬다. 그는 “‘이게 가능한 일이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일 빌트는 레데츠카의 금메달을 전하면서 ‘메가 센세이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체코에선 ‘눈 위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스노보드와 스키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스포츠다. 스노보드가 하나의 보드 위에서 인과 아웃 두 개의 에지로 타는 데 비해 스키는 스키 1개당 2개씩 4개의 에지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한다. 활강 때 스피드도 스키가 스노보드에 비해 평균 시속 50㎞ 정도 더 빠르다.
스키를 타는 것은 스노보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스키의 빠른 속도에 적응하면 스노보드 타는 게 슬로모션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스키)에서 아래(스노보드)로 내려가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레데츠카는 그 상식을 완전히 깨뜨렸다.
구창범 프리스타일 스키 국가대표 코치는 “레데츠카가 종목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타고난 자질로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레데츠카의 코치인 저스틴 라이터는 “레데츠카가 출발선을 박차고 나갈 때마다 그의 뒤에도, 안에도 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일반 알파인스키 선수들과 달리 슬로프를 거의 직선으로 타고 내려오는 배짱이 그의 ‘불’이었다. 레데츠카는 스키와 스노보드 사이에 놓인 심연을 마치 존재하지 않기라도 했던 것처럼 가볍게 뛰어넘었다.
레데츠카가 말했다. “스키든, 스노보드든 둘 다 그냥 언덕을 내려오는 거예요.”
레데츠카는 22일 주종목인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예선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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