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노인과 마흔살 늙은 소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인생 동행기’가 전국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의 신기원을 열며 개봉 20일 만에 관객 1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둔 ‘워낭소리’. 영화 속에서 올해 여든한살의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름없는 일소는 저마다의 삶에서 가장 왕성하던 시절 30년을 함께 살아온 친구요 스승이요 부부다.

소의 평균 수명은 15살. 하지만 할아버지의 일소는 40년 가까이 살았다. 아픈 몸으로 기다시피 하며 일을 하면서도 소를 위해 논밭에 비료와 농약 한방울 뿌리지 않고, 편한 사료를 마다하고 매일 새벽마다 정성들여 쇠죽을 쒀 먹인 할아버지의 지극정성 덕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소 역시 ‘시한부 삶’을 이끌어 가면서도 할아버지의 농기구로써 제 일을 다했다.

‘일소는 일을 안 하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할아버지는 지독하리만큼 소를 부렸고, 할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소는 지친 걸음을 쉬다 걷다 하며 끝까지 할아버지와 동행했다. 이를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진짜’ 아내 이삼순 할머니 눈에는 이슬이 맺히기 일쑤였고, 할아버지와 소도 함께 눈물 흘리곤 했다.

하지만 결국 소는 “우리가 먼저 가고 갈 것이지…. 좋은 데로 가라”는 노부부의 말을 들으며, 힘겹게 지탱해온 눈꺼풀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밭 위쪽의 산자락에 소를 묻고 막걸리를 따르는 할아버지의 손은 슬픔에 파르르 떨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여전히 바쁜 산촌생활을 힘들게 꾸려 가고 있다. 영화제작사 ‘스튜디오느림보’의 고영재 PD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소가 지켜보고 있을 산자락 아래 밭에서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보냈다. 소와 할아버지는 여전히 한 땅에서 햇볕을 쬔 것이다. 겨울 들어서는 일본인들이 심어놓은 것이라며 소무덤 주변 산의 아카시아 나무를 땔감으로 모은다.

그러나 소가 곁을 떠난 후 할아버지의 건강은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 여덟살 때 침을 잘못 맞아 불편해진 왼발의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고혈압으로 인해 일어나는 두통의 횟수도 날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머리맡에는 늘 두통약이 떠나지 않는다. 식사량도 부쩍 줄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늙은 소가 죽기 전에 새로 산 일소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밥값은 할 정도로 일을 배웠다는 점이다. 암놈이라 일을 부리기에 마뜩하지 않은 구석이 있지만, 새끼를 낳은 것은 작은 기쁨이 됐다.

영화가 개봉됐지만 할아버지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볼 마음도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영화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는 것이 고PD의 귀띔이다.

요 며칠 새 산골 노부부의 심기는 무척 불편하다. 영화가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무턱대고 찾아와 아무것이나 물어대는 일부 취재진 때문이다. 심지어 주변에서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는 말로 노부부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해 고PD는 “세상물정과 관계없이 평온한 삶을 살던 분들이 영화나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진 후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있어 왔다”며 “노부부가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변의 배려가 따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